《지난해 12월 24일 일본 나고야에서 기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인구 6만 명의 소도시 나가쿠테(長久手)를 찾았다. 이곳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고민하는 일본에서 보기 드물게 인구 증가를 이뤄낸 곳으로 유명하다. 1960년대에는 전 주민이 6600여 명인 작은 마을에 불과했지만 꾸준히 인구가 늘면서 2012년 한국의 ‘군(郡)’에 해당하는 ‘정(町)’에서 ‘시(市)’로 승격됐다. 지난해 말 기준 인구는 6만397명이다.》
전국 각지의 인재를 빨아들일 만한 유명한 기업도 없고, 관광 명소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인구 증가라는 어려운 목표를 달성했을까.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시청에서 기자를 맞이한 사카키모토 요시키(신本芳樹) 정보과 계장은 계획적이고 순차적인 토지 정비, 육아 및 교육에 대한 공격적 투자 등을 그 비결로 꼽았다.
합리적 가격에 양질 주택 공급
일본은 2005년에 처음 인구가 줄었다. 지난해 처음 감소한 한국보다 16년 빨랐다. 특히 일자리를 찾아 지방에서 대도시로 이동하는 젊은이가 늘면서 일부 소도시는 소멸 가능성까지 우려하고 있다.
과거 나가쿠테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시 당국은 1972년부터 서부, 동부, 남부, 중앙 순으로 시 전체를 순차적으로 정비하며 양질의 주택 용지를 꾸준히 공급했다. 그 덕에 21.55km²인 시 전체 면적의 약 절반이 토지구획 정비사업을 거쳤다. 사실상 50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계획도시나 다름없는 셈이다. 대도시가 아니어서 땅값이 비싸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현재 나가쿠테에서는 반듯하게 정비됐을 뿐 아니라 주변에 녹지도 많은 150m² 크기의 토지와 그 위에 지어진 주택의 합산 가격이 약 4000만∼5000만 엔(약 4억1000만∼5억2000만 원)이다. 소위 ‘영끌’을 하지 않아도 어지간한 직장인이라면 집을 사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준이다. 시는 2005년 조례 및 경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주요 도로에 나무를 대거 심었고 주택을 지을 땐 이웃 건물과 충분한 간격을 두게 했다.
시청에서 도보로 약 30분 떨어진 남부 지역으로 발길을 옮겼다. 당국은 1998년 시내를 동서로 횡단하는 도메이 고속도로 주변에 있는 1km² 토지를 정비해 1880채의 주택을 건설했다. 토지 정비 전에는 그야말로 황폐하고 버려진 땅이었지만 지금은 엽서에 나올 것 같은 깔끔하고 예쁜 주택단지로 바뀌어 있었다. 이 지역의 한 공원에서는 20여 명의 초등학생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일본 소도시에서 노인이 아니라 아이들이 대거 모여 있는 것은 그야말로 보기 드문 풍경이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인구 증가의 또 다른 비결은 ‘아이 키우기’에 대한 공격적 투자다. 사카키모토 계장은 “보육원과 학교를 대거 늘렸고 신생아 또한 생후 57일부터 보육원에 맡길 수 있다”며 어떤 지방자치단체와 비교해도 육아에 대한 투자는 뒤지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실제 2012년 6곳에 불과했던 시내 보육원은 현재 18곳으로 3배로 늘었다.
시내에서 평생교육 가능
교육 환경도 우수하다. 나가쿠테에는 초등학교 6개, 중학교 3개, 고등학교 2개, 대학 4개가 있다. 인구 6만 명의 소도시지만 이곳을 벗어나지 않고도 평생 교육이 가능한 셈이다.
초등학교 6개 중 가장 늦게 문을 연 이치가호라 초교는 2008년 설립됐다. 개교 당시 540명이었던 학생 정원은 지난해 1116명으로 늘었다. 일본 초등학교 한 개의 평균 학생 수는 약 320명. 설립한 지 14년밖에 된 신생 초등학교에 일본 평균보다 3.5배 많은 학생이 있는 셈이다. 그만큼 아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생이 많다는 것은 젊은 부모들이 많다는 뜻도 된다. 실제 다른 도시에서 이곳으로 이사 오는 사람의 상당수가 30, 40대 젊은층이다. 이들이 나가쿠테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니 매년 출생자가 사망자보다 약 400명 더 많다. 2020년 일본 전체에서 출생한 신생아 수가 84만832명으로 1899년 통계 작성 이후 121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작년 12월 기준 나가쿠테 주민의 평균 연령은 40.6세. 전국 비교가 가능한 2015년에는 38.6세로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낮았다.
인구가 늘어나자 자연히 상업시설과 편의시설도 늘었다. 이것이 인구 유입을 더 촉진시키는 선순환도 일어났다. 2016년 대형 쇼핑몰 ‘이온몰’, 2017년 스웨덴 가구 브랜드 ‘이케아’의 개점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케아 나가쿠테점의 매장 면적은 2만 m²로 일본 내 이케아 매장 중 가장 크다.
개점 당시 이케아는 나가쿠테보다 인구가 약 40배 많은 나고야, 약 7배 많은 도요타 등 주변의 대도시를 제치고 이곳을 선택했다. 이케아저팬 측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그 이유로 “젊은 세대가 많아 매력적”이라고 했다.
이케아 매장에서 만난 30대 여성은 “나가쿠테에는 대형 슈퍼마켓 체인, 세련된 카페, 다양한 음식점이 있어 살기 편하다”며 만족해했다. 이 여성은 “남편이 차로 약 35분 거리인 도요타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곳으로 이사 갈 생각은 없다. 남편 또한 출퇴근의 번거로움을 감안하더라도 이곳에서 살겠다고 한다”고 했다.
시 당국은 2017년 시민 2366명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47.3%가 ‘살기 좋다’, 42.1%가 ‘어느 정도 살기 좋다’고 답했다. 시민 10명 중 약 9명이 나가쿠테에서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30년 후 인구 감소에도 대비
당국은 인구 증가를 위한 정책뿐 아니라 30년 후 인구 감소에도 대비하고 있다. 최근 당국의 인구 통계 전망에서 시 인구가 2035년 6만5482명으로 정점을 찍고 이후부터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젊은층은 점차 나가쿠테에서 빠져나가는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당국은 요즘 ‘사람과 사람의 인연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나가쿠테가 고향이 아닌 시민들을 대상으로 이들끼리의 인연을 만들어주는 데 열심이다. 나고 자란 고향이 아니더라도 지역 사회에 대해 애착이 높아지고, 이를 통해 현 주민의 자녀들 또한 다른 도시로 떠나지 않고 이곳에서 계속 살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당국은 우선 시내 6개 초등학교를 주민 커뮤니티의 기본 단위로 설정했다. 학교가 있는 구역별로 ‘마을 만들기 협의회’ 발족을 지원하고, 각 협의회가 자체적으로 마을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 당국 또한 시내 곳곳에 공원, 휴식처 등 ‘지역 공생 스테이션’을 만들어 주민들이 도보 거리에서 쉽게 교류할 수 있게끔 유도하고 있다.
요시다 잇페이(吉田一平) 시장은 “현재 나가쿠테 거주의 강점은 쾌적한 주거 환경과 우수한 육아 및 교육 여건이지만 30년 후에는 지역사회의 끈끈함과 친밀도가 될 것”이라고 일본 언론 인터뷰 때마다 말하고 있다. 지진 등 자연재해 때 가장 먼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멀리 있는 형제자매와 친척이 아니라 바로 옆집의 이웃임을 감안할 때 그야말로 현명한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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