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는 대기업 인사과에서 17년간 경력을 쌓은 전문가이자 모범적 리더였다. 하지만 그는 칭찬을 받을 때조차 동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될까 봐 두려웠고 새로운 도전에도 주저하곤 했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모범생인 본인과 그렇지 못했던 오빠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이 때문에 자기 탓에 오빠와 부모님이 멀어졌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이런 관계가 직장에서도 재현될까 봐 두려웠다.
한편 B 씨는 좀처럼 부하 직원에게 자율권을 주지 않고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임원이다. 그는 어린 시절 실질적인 가장으로서 집안의 해결사 역할을 해야 했다. 이에 남에게 일을 맡긴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 일이라 생각해왔다.
A, B 씨의 사례는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최신호 아티클 ‘임원실에 숨어 있는 가족의 망령’을 통해 소개됐다. 필자인 데버라 앵코나 MIT슬론 경영대학원 교수 등은 어린 시절 가정에서 경험한 권위, 정체성 등이 직장 내 리더십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채널A 프로그램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육아법 코칭의 솔루션을 대개 아이의 가정환경과 부모와의 관계에서 찾는 것처럼, ‘직장인 금쪽이’를 떠올리게 하는 결과다.
팬데믹이 야기한 변혁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리더십 모델을 고민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와 맞물려 진행 중인 연구 가운데 다수가 리더십 육성을 자녀 양육법과 연결 짓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관련 연구자들에 따르면 빠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리더가 해결해야 할 이슈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어린 시절 가정에서 경험한 ‘과거의 망령’을 극복함으로써 스스로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에르미니아 이바라 런던경영대 교수는 롤모델이 될만한 ‘임시적 자아(provisional self)’를 만들고 여기에 반복적으로 자신의 자아를 대입해 ‘또 다른 나’를 찾을 것을 제안했다. 리더십 과제 두 번째는 부하 직원들을 효과적으로 ‘양육’하는 것이다. ‘룬샷’의 저자, 사피 바칼 박사는 자녀 사이에 편애를 금하듯 다양한 유형의 직원을 골고루 보듬는 ‘정원사형’ 리더십을 제안했다. 그는 “파격적인 괴짜 아이디어를 내는 ‘예술가형’ 조직원과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줄 ‘병사형’ 조직원을 모두 동등하게 사랑하라”고 주장했다.
팬데믹 기간,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새삼 조직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세심한 리더십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는 목소리도 있다. 사닌 시앙 듀크대 프랫 공대 교수는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자녀별 상황과 특성에 맞게 각기 다른 대처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는 리더들이 조직 내 획일적 리더십에 대한 무용론을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팬데믹 이후 진행된 스탠퍼드대 세미나에서 정재계 리더들이 도출한 새로운 리더십 모델은 ‘사피엔스적 리더십’이었다. ‘자녀만은 내 뜻대로 될 수 없다’는 겸허한 자세가 부모의 미덕이듯, 인간적이고 겸손한 리더십이 뉴노멀 시대의 새로운 기준임이 시사하는 바를 곱씹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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