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예상보다 더 늘어난 초과세수를 활용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하자 하루 만에 기획재정부가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공식화했다. 작년에 당초 걷으려던 것보다 60조 원 정도 세금이 더 걷히자 이를 기화로 대선 직전 추경 편성을 밀어붙이려는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어제 “소상공인 지원, 방역 보강에 한정한 원포인트 추경을 편성하고자 한다”고 했다. 매출이 준 자영업자들에게 300만 원씩 방역지원금을 지원하는 등 14조 원 규모의 추경안을 짜서 이달 마지막 주 국회에 내겠다고 한다. 대선 전달인 다음 달 추경안이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2020년 4·15총선 직전의 추경, 지난해 4·7재·보궐 선거 전 추경에 이어 3년 연속으로 선거 직전에 추경이 통과되는 것이다.
작년 말부터 여당은 초과세수를 추경 편성에 쓰자며 압박해 왔고, 대통령과 기재부도 이번 추경 편성 이유로 늘어난 세수를 들었다. 재작년 말 정부는 작년 세금이 282조7000억 원 걷힐 걸로 봤지만 법인세수, 부동산세수 등이 급증하자 작년 7월 2차 추경 때 세수가 31조6000억 원 늘어날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어 11월 말에는 19조 원 더 걷힐 것이라고 했다가 이제는 그보다도 10조 원 정도 더 걷힐 것이라고 한다.
나라 살림을 책임진 재정당국이 세수 예측에 3차례나 실패하고, 10조∼20조 원도 아니고 60조 원이나 되는 세수 오차를 낸 건 중대한 실책이다. 기재부의 반복된 세수 전망 착오는 정치권이 “돈을 더 풀자”고 주장할 빌미를 제공했고 국론 분열을 자초했다. 세수 확대의 원인 중 하나인 부동산 세금 폭증도 따지고 보면 집값을 끌어올린 부동산정책 실패의 결과다. “송구하다”는 말 한마디로 슬그머니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제대로 된 반성과 개선방안을 내놓지도 않고 갑자기 공돈이라도 생긴 양 이를 토대로 추경을 짜겠다고 한다. 더 걷힌 세금을 활용한다지만 작년 결산이 4월에나 끝나기 때문에 이번 추경은 대부분 적자국채를 발행해 충당해야 한다.
작년에 세금이 더 걷혔어도 정부가 훨씬 많은 돈을 써버려 관리재정수지는 70조 원 넘게 적자다. 모두 청년 세대가 나중에 세금으로 갚아야 할 빚이다. 그런데도 대선을 코앞에 두고 나랏빚 줄일 데 써야 할 돈을 추경에 돌려쓰면서 당정청이 생색을 내는 건 낯 뜨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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