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왔네요? BTS 노래 들어본 적 있어요.” 요즘 미국 주요 도시 공항의 출입국심사대 공무원들은 한국 여권을 내미는 방문자들에게 종종 이런 코멘트를 건넨다. 불고기를 먹어봤다거나 ‘오징어게임’을 봤다며 말을 건네기도 한단다. 출입국심사 담당자들이 깐깐하기로 악명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가운 환대다. 입국 목적과 숙소, 체류 기간 등을 취조당하듯 심사받는 다른 외국인과 달리 가볍게 심사대를 통과하면서 으쓱해졌다는 사람도 있다. 한국의 ‘여권 파워’가 최고조로 발휘되는 순간이다.
▷한국의 여권지수가 올해도 최상위권에 올랐다. 국제교류 전문업체인 헨리앤드파트너스가 발표한 여권지수에서 한국은 독일과 함께 2위에 랭크됐다. 1위인 일본, 싱가포르 다음이다. 한국 일반여권으로 비자(사증)를 받지 않고, 혹은 간단한 절차만으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나라는 현재 126개국. 관용여권으로는 149개국에 이른다. 20위까지 상위권은 유럽, 북미 국가가 대부분이다.
▷헨리여권지수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각국 데이터를 바탕으로 산출된다. 무비자 국가 및 비자면제 협정을 맺은 국가가 많을수록 점수가 높다. 비자면제 협정을 체결한 상대국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국력이다. 선진국의 경우 협상 상대국의 경제력이나 지위는 물론 시민의식까지 검증한다는 게 외교부의 귀띔이다. 불법 체류자가 많은 저개발국, 테러리스트들이 활동하는 국가나 지역은 비자면제 협상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북한은 104위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나라가 39곳에 불과하다.
▷한국의 여권 파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 더 두드러진다. 코로나19 방역 실패로 해외 입국을 제한당한 국가들은 2020년 이후 여권지수가 줄줄이 떨어졌다. 방문국 도착 시 발급되는 도착비자를 받을 수 없게 된 탓이다. ‘여행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차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동 자유의 양극화가 심해졌다. 선진 부국인 미국과 영국조차 이런 이유로 6위에 머물렀다. 반면 전 국민이 고강도 방역에 동참한 한국은 순위가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손바닥 크기의 얇은 수첩 한 권에는 여권번호와 인적사항만 적혀 있는 게 아니다. 거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나라의 위상과 국력, 국제사회의 평가가 총체적으로 담겨 있다. ‘여권지수 2위’는 한국이 이뤄낸 그만큼의 경제적, 외교적 성취를 보여주는 성적표다. 전 세계적인 K콘텐츠 인기가 끌어올린 국가 이미지도 한몫했음이 분명하다. 한국은 이제 글로벌 무대에서 환영받으며 해외 입국심사대를 자유롭게 통과하는 나라가 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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