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면 돌들이/서로를 품고 잤다 저만큼/굴러 나가면/그림자가 그림자를 이어주었다 떨어져 있어도 떨어진 게 아니었다 간혹,/조그맣게 슬픔을 밀고 나온/어린 돌의 이마가 펄펄 끓었다 잘 마르지 않는 눈빛과/탱자나무 소식은 묻지 않기로 했다
―박미란(1964∼)
“저녁이면 돌들이 서로를 품고 잤다.”
첫 구절만으로도 이 시에 대해서는 더 고민할 필요가 없다. 진정한 맛집에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은 법이다. 저녁에 서로를 품고 자는 돌들이라니. 이 말을 들은 순간 우리는 그것들을 본 적도 없으면서 이미 본 듯도 하다.
사실 우리는 저 돌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궁금하면 어두운 밤중에 깨어 있으면 된다. 피곤에 찌든 남편은 방구석에서 이를 갈며 잔다. 어린 자식은 몸을 공처럼 동그랗게 말고 잔다. 더 큰 자식은 팔다리를 대자로 펼치고 잔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면 서로 품고 자는 돌들이라는 표현을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하루 종일 데굴데굴 구르는 돌처럼 산다. 그분이 시키시면 앞구르기도 하고, 뒤구르기도 한다. 구르다가 상처도 입고 속에 금이 가기도 한다. 다난했던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돌에게는 다른 돌들이 위안이고 희망이다. 돌아갈 집이 있고 함께 기대어 잠들 가족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다. 그건 매우 고마운 일이다.
옛날에는 아궁이에 돌을 데워 그것을 품고 잤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뜨끈하게 데운 돌을 슬쩍 쥐여 주기도 했다. 가슴이 버석하게 말라가고 내가 무정한 돌인지, 돌이 무정한 나인지 헷갈리는 날에는 이 시를 읽는다. 겨울이니까 마음이라도 뜨끈한 온돌이 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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