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준말이다. 말 그대로 대학에서 학문을 수행할 수 있는(수학·修學) 능력이 있는지 알아보려는 거다. 1994학년도 도입 이후 얼마간은 이 취지가 살아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수능이 올해 뭇매를 맞았다. 직접적 발단은 생명과학Ⅱ 오류지만, 근본 원인은 고질적이다. 교수들이 주축인 출제진이 변별력을 높인다며 문항을 배배 꼬아온 결과다.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지 가늠하기 위해(정책 목표) 수능(정책 수단)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게, 고교 교육과정 내에서 출제한다’는 원칙을 어긴 탓이다.
학교 수업에 충실히 임한 수험생들이 틀렸다고 지적하는데, 현장과 동떨어진 교육당국은 기존 정답을 고수했다. 법원은 “이 문제는 대학 수학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기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며 학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쯤 되면 정부는 수능 문항의 적정성을 판단함에 있어 누구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는지 반성해야 한다.
20일로 국내 발생 2년이 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방역정책을 코로나방역능력시험이라 설정해보면 어떨까. 코로나19를 줄이기 위해(정책 목표) 거리 두기와 방역패스 등(정책 수단)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방역지침이 수시로 바뀌고, 방역패스는 법원에서 속속 제동이 걸려 이제는 언제 어디서 뭘 할 수 있는지 헷갈린다.
당장 주변에 몇 가지만 물어보자. “백화점 푸드코트에 방역패스 없이 갈 수 있나?” “백신 미접종자가 혼자 식당에서 밥 먹기, 혼자 영화 보기, 혼자 노래방 가기 중에 할 수 있는 건 뭘까?” “헬스장 트레드밀에서 시속 6km 이상으로 뛰어도 되나?” 일반 국민은 물론 방역 담당자조차 바로바로 대답하기 어려울 거다. 국민을 위한다는 방역지침이 자칫 국민을 범법자로 만들 판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집단발생이 19건(327명) 일어난 대형마트에는 방역패스를 적용해놓고 233건(7491명) 발생한 교회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았던 걸 과학적으로 설명할 길도 없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엔 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잘 몰랐기에 시행착오가 불가피했다. 돌아보면 2020년 초만 해도 코로나바이러스의 잠복기가 얼마나 되는지, 전파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심지어 공기 중으로 전파가 되는지조차 몰랐다.
그러나 2년 사이 인류는 이 바이러스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냈고, 백신과 치료제도 만들었다. 델타와 오미크론처럼 ‘변이’를 거듭하지만 기존 지식과 방역정책을 뒤집어야 할 정도로 ‘변종’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통상 데이터가 쌓이면 정책 일관성이 높아져야 하는데, 방역정책은 거꾸로 간다. 정부 지침을 충실히 따라온 사람들도 이제는 “코로나바이러스는 밤 9시 이후에 활성화되나?” “4명이 모이면 안 걸리고 5명이 모이면 걸리나?”라고 비아냥댄다.
정부가 방역정책을 결정할 때 과학과 정치 사이에서 갈지자를 그렸거나, ‘방역 전문가’가 아닌 ‘친정부 전문가’의 의견에 쏠렸거나, 실패한 방역정책의 원인을 엉뚱한 곳으로 돌렸거나 하는 등의 여러 원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 사이 많은 가게가 망하고,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못 갔다. 이런 고통을 멈추려면 코로나19 3년 차의 정부는 과학적 근거에 따라 국민의 눈높이에서 일관된 방역정책을 밀고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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