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부터 즐기던 탁구가 정년퇴직을 앞두고 새로운 길을 제시해줬다. 2020년 말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에서 은퇴한 전인상 씨(62)는 그해 말 삼다도 제주도에 터를 잡고 탁구 지도자의 길을 가고 있다. 정년을 앞두고 치밀하게 준비한 결과였다.
“100세 시대지만 현실은 60세쯤이면 정년퇴직을 해야 한다. 그래서 평생 좋아했던 탁구로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했다. 2014년 탁구 2급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땄다. 지난해엔 노인체육지도자 자격증도 획득했다. 올해부터 초등학교 방과후 지도자로 활동한다.”
중고교 시절 대전시내 탁구장에서 좀 놀았던 전 씨는 대학 1학년 때 탁구서클(현 동아리)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탁구를 본격적으로 치기 시작했다. 실력이래야 친구들과 어울려 공을 넘기는 수준이었지만 책을 보고 거울 앞에서 자세를 익혔다. 그렇게 2년을 활동하다 군에 입대하고 복학한 뒤 취업 준비를 하면서 한동안 탁구를 잊고 지냈다.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대한육상연맹에 입사했다. 선수들과 지도자들을 행정적으로 뒷받침해야 해 1988년 서울 올림픽까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육상연맹 사무실이 서울 을지로에서 잠실로 옮겨졌고 1990년대 초반 청담동에 있는 대원탁구장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다시 탁구와 연을 맺게 됐다.”
탁구의 신세계가 펼쳐졌다. 선수 출신 코치가 직접 레슨을 해주고 있었다. 과거엔 상상도 못 하던 일. 선수 출신에게 조련받아 실력이 향상된 마니아들이 모여 있는 탁구장들도 소문이 났다. 전 씨는 대한항공 선수 출신 권영랑 관장에게 원포인트레슨도 받으면서 탁구 실력을 닦았다. 일을 마치면 어김없이 탁구장으로 달려가 한두 시간 땀을 흘렸다. 실력이 비슷하고 열정이 있는 사람들을 주축으로 대원탁구동호회를 만들어 대회에도 출전했다. 1997년 서울 강남구 생활체육 탁구대회에 출전해 복식 우승, 단식 3위를 하는 등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탁구는 직장생활의 해방구였다. 일하며 얻는 모든 스트레스를 탁구공에 실어 날렸다. 탁구를 치면 한두 시간은 잡생각 없이 탁구에 집중할 수 있다. 내 삶의 큰 활력소였다.”
실력이 늘자 어딜 가든 대접도 받았다. 탁구 좀 치자 육상연맹에서 일한다고 하니 ‘육상선수 출신이라 역시 발이 빠르다’고 엉뚱한 칭찬을 하기도 했다. 어떨 땐 ‘체육과 출신이어서 잘 친다’고까지 했다. 그는 운동과 전혀 상관없는 영문과 출신이다. 각종 육상대회가 전국에서 열리기 때문에 출장이 잦았던 그는 항상 탁구 라켓을 가지고 다녔다. “난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일 끝나면 바로 탁구장으로 달려갔다. 몸이 찌뿌드드해도 탁구 한두 시간 치면 바로 컨디션이 좋아졌다”고 했다. 탁구를 너무 많이 쳐 ‘엘보’가 오긴 했지만 아파서 병원 신세를 진 적은 없다.
2007년 KADA로 옮겨서도 탁구는 멈추지 않았고 각종 대회에서도 성과를 냈다. 2014년도 도닉배전국오픈탁구대회 혼합복식에서 우승했다. 2016년 강동구의회의회장배 탁구대회 복식에서도 1위를 했다. 2019년 제2회 에리사랑시니어탁구대회 단식에서도 우승했다.
“서울 사는 사람들의 로망이라고 할까? 꽉 막힌 빌딩 숲을 떠나 탁 트인 곳에서 살고 싶었다. 강원도 원주, 강릉 등도 생각했지만 제주가 눈에 들어왔다. 제주에 친구가 살고 있어 쉽게 결정했다. 은퇴하고 바로 제주로 내려왔다.”
제주에서의 삶도 자연스럽게 탁구가 주가 됐다. 제주탁구클럽에 가입해 활동했다. 외지인으로 제주에서 정붙이고 잘 살 수 있게 된 원동력에는 매일 만나는 회원들과의 교류가 있었다. 전 씨는 지난해 말 열린 제주도탁구협회장기 탁구대회 백두부 복식에서 우승했고, 4부 단식에서 준우승하는 등 실력을 과시했다. 올해부터 초등학생들 지도자로 나서지만 향후 시니어를 대상으로도 지도할 계획이다.
“탁구는 사계절 언제든 칠 수 있다. 자기 몸만 지탱할 수 있다면 가능하다. 제주도 장애인복지관에서 레슨을 해준 적이 잇다. 휠체어 타고, 목발 짚고도 칠 수 있다. 탁구는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아 최고의 실버스포츠로도 알려져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탁구로 희망을 전하고, 어르신들께는 건강과 행복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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