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간혹 암 덩어리가 겉으로 삐져나와 육안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겉으로 보이는 암세포는 붉게 성난 모습이다. 혈관을 빨아들여 시뻘겋고, 터질 듯 단단한 육질의 덩어리는 감때사납다. 암 덩어리는 그악스럽게 번식하며 개체수를 늘린다.
암은 유전자가 고장 나면서 내 몸의 일부가 변형되고 무한 증식을 하는 병이다. 세포가 어느 시점이 되면 더 이상 자라지 말고 멈추어야 하는데, 멈추라는 신호를 무시하고 마구 자라난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죽음을 거부하고 고비늙은 채 영생을 꿈꾸며 마구 자라나는 것이다.
암세포가 거칠게 자라다 보니 필히 주변에 피해를 준다. 주변 조직을 갉아먹고 파괴한다. 주변이야 어찌되든 말든 제 욕심만 채우며 번식한다. 경찰 역할을 하는 면역세포를 따돌리고, 주변 세포들까지 나쁘게 물들이며 여기저기 전이하고 퍼져나간다. 하는 일은 없으면서 남 몫의 영양분을 게걸스럽게 빨아먹는다. 결국 상식적인 보통의 세포는 암세포 앞에서 속절없이 쓰러지지만, 암세포는 귀가 막혀 주변 세포의 신음을 듣지 못하고, 눈을 감아 정상세포가 죽어가는 것을 보지 못한다. 다른 세포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 채, 오직 제 편안함만 추구하는 것이다.
문제는 변형된 자아(自我)인 암세포가 활개를 치면 종내 무엇이 정상인지 알기 어렵게 된다는 점이다. 암세포들이 한몫 단단히 챙겨가는 것을 보다 보면, 탐욕스럽지 않은 정상세포들은 벼락거지가 된 기분이 든다. 자기만 손해를 보는 것 같아지면, 정상세포들도 덩달아 암세포스러워진다. 작은 탐욕은 큰 탐욕을 부르고 암세포와 정상세포는 갈수록 이기적이 되며, 마침내 탐욕이 정상이 된다. 탐욕의 끝에 조화로운 인체는 무너지며 사람은 죽음에 이르게 된다.
사람 역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순간에 이르러서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눈앞의 죽음을 거부하고 몸에 좋다는 온갖 것을 찾지만 독버섯처럼 퍼져버린 암세포 앞에서 영생이란 없다. 종국에 사람이 죽게 되니 암세포도 죽게 되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탐욕은 멈춘다.
암세포는 거침없는 자기증식이 탐욕인 줄 자신만 모른 채 조화로운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종국에는 모두를 죽이고 자신마저 죽음에 이르게 된다. 욕망을 멈출 줄 알았다면, 주변을 배려했다면, 조금만 슬기로웠다면 조화로운 공동체는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고통스러워도 이들을 수술로 도려내거나 힘들어도 항암제로 암세포를 때려잡았다면 죽음을 앞당기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가만히 우리 사회를 들여다본다. 이러한 현상이 비단 암세포에게만 국한된 현상일까? 탐욕은 질기고도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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