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영]국민 화병만 키우는 삼류 정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3일 03시 00분


편 가르기 정치가 만성 질환 초래
통합의 정치로 사회적 비용 줄여야

이진영 논설위원
이진영 논설위원
요즘은 뭐든 코로나 핑계를 대는 게 습관이 됐지만 실은 코로나 탓이 아닌 경우가 많다. 2020년 고용절벽은 코로나보다는 국내 경제의 고용창출 역량이 떨어진 탓이라는 게 한국은행의 진단이다. 출산율 저하도 코로나 때문만이 아니다. 현 정부 출범 후론 출산율이 한 번도 반등하지 못하고 내리막길만 걸었다. 학력 붕괴도 학력 경시 정책으로 코로나 이전부터 시작된 만성적 교육 문제다.

국민 5명 중 1명이 ‘우울 위험군’이라는 정부 발표에 ‘코로나 블루’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건 미국 학자의 논문 ‘정치가 우리를 병들게 하고 있다’를 읽고 나서다. 논문의 결론은 분열적인 정치가 만성 스트레스 요인이라는 것. 도널드 트럼프 집권 전후로 이뤄진 세 번의 설문조사 결과 미국인의 40%는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으로 정치를 지목했고, 25%는 정치 때문에 이사 가고 싶어 하며, 5%는 정치 때문에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적 고통은 트럼프 집권기에 심해졌고, 2020년 선거 후에도 트럼프의 불복 선언 탓인지 악화됐다고 한다.

이 조사에서는 응답자들에게 32개 문항을 제시한 후 5점 척도(1점 ‘전혀 아니다’, 5점 ‘매우 그렇다’)로 답하게 했는데 주요 문항은 다음과 같다. 정치 때문에 피곤하다, 나와 정치 성향이 다른 언론 보도를 보면 미치겠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기길 바란 적이 있다, 선거 결과에 지나치게 신경 쓴다, 정치적 견해차로 친구나 가족 모임에서 문제가 생긴 적이 있다, 나중에 후회할 글을 인터넷에 올린 적이 있다….

다 내 얘기 같지 않은가. 촛불로 하나 된 민심을 갈라놓은 2019년 조국 사태를 떠올려 보자. 다들 ‘친(親)조국’ ‘반(反)조국’으로 찢어져 열병을 앓았다. 부모 앞에서도 언성을 높였고, 단군 이래 최대의 ‘페친 물갈이’가 이뤄졌다. 온라인은 실명으론 내뱉을 수 없는 막말과 저주로 도배가 됐다. ‘조국 때문에 우울증, 탈모, 분노조절 장애를 앓고 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집단소송까지 제기됐다. 조국 사태는 윤미향 사태로, 다시 추미애와 윤석열 사태로 이어지면서 집단적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급격히 올려놓았다.

선거는 정치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이벤트다. 요즘 양대 대선 후보 지지자들은 “○○가 되면 나라 망한다” “△△가 되면 이민 가겠다”며 사생결단을 낼 태세다.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도 무병(無病)지대에 있지 않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까지 가세해 증폭시키는 정치적 소음은 눈 감고 귀를 막아도 피하기 어렵다. 선거가 끝나면 패배한 쪽에선 집단 화병을, 승리한 쪽에선 며칠 좋다가도 다시 분열된 나라 걱정에 답답증을 호소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정치 양극화는 민주화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여당 지지층의 연평균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75%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의 대통령 지지율은 5%에 불과했다(한국행정연구원). 정치 스트레스가 만성화하기 좋은 체질인 셈이다.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해롭다는데 우린 정치 스트레스로 매일 줄담배를 피우듯 명을 재촉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고 끊을 수도 없다. ‘식견 있는 시민(informed citizen)’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기초다. 정치를 멀리하면 민주주의가 병들고, 관심을 가지면 내 마음이 병드는 딜레마 상황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삼류 정치로 얻은 집단적 화를 가라앉힐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백약이 듣지 않는 망국의 불치병이 되기 전에.

#코로나 핑계#국민 화병#삼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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