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선미]과학적 창의성으로 삶을 ‘감각’하는 방법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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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산업1부 차장
김선미 산업1부 차장
“아침 해가 희미하게 장밋빛 망토를 걸치고, 동쪽 높은 언덕의 이슬을 밟고 오는구나.”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햄릿의 친구인 호레이쇼가 근위장교 마셀러스에게 한 말이다. 해가 뜨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지난해 말 세상을 뜬 사회생물학의 대가 에드워드 윌슨 미국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저서 ‘창의성의 기원’에서 이 대사를 언급하며 인류 진화의 탁월한 성취로 ‘은유’를 꼽는다. 생생한 이미지를 찾도록 상상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은유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야만인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한다.

과학 저서 ‘인간 본성에 대하여’와 ‘개미’로 두 차례 퓰리처상을 받은 윌슨은 과학적 창의성이 인문학과 예술의 시야를 넓힌다고 봤다. 그가 1984년 내놓은 ‘바이오필리아(biophilia·생명을 향한 인간의 사랑) 가설’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요즘 과학계와 예술계에서 각광받는 학설 중 하나다. 인간 유전자 속에 자연에 대한 애착이 내재돼 새소리를 듣거나 식물의 잎을 만지면 마음의 평안을 느낀다는 것이다. 자연은 다중감각이 가능한 환경이다.

오랫동안 시각에 밀려나 있던 촉각과 후각 등 정서적 감각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진행된 ‘No Limits in 서울’이라는 제목의 온라인 심포지엄은 참신하고 인상 깊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주최한 무장애 예술주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우리의 감각이 어떻게 전이되고 확장될 수 있는지 탐색하는 자리였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세상을 보는가’란 주제로 강연한 이토 아사 도쿄공업대 교수(미학)는 각 존재가 지닌 고유의 세계 인식, 즉 ‘움벨트(Umwelt)’ 개념을 강조했다. 일례로 시력을 잃은 50대 남성은 눈이 아닌 다른 감각을 통해 역에서부터 집까지 간다. 길을 건너 100m 정도 직진하면 오른쪽에서 장어구이 식당 냄새가 나고 계속 가면 두부 냄새가 난다. 시각장애인은 ‘시각이 결여된 비장애인’이 아니라 ‘다른 감각들로 보는’ 사람들이다.

이토 교수는 도쿄 모리 미술관에서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팀을 이뤄 작품을 감상하는 ‘음성 이미지 미술관 여행’이란 프로젝트도 진행한 적이 있다. 비장애인은 작품의 크기와 색상 등 객관적 정보뿐 아니라 작품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시각장애인에게 들려줬다. 이런 주관적 의미를 나누자 대화는 은유로 가득 채워지고 서로 다른 관점이 만나 공동의 해석이 이뤄졌다. 참가자들은 “눈이 보인다는 게 항상 우월하지만은 않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

국내 SF소설계를 이끌고 있는 김초엽 작가의 강연 주제는 ‘아름다움을 감각하는 다른 방법들’이었다. 10대 때 3급 청각장애 판정을 받은 포스텍 생화학 석사 출신의 김 작가는 인간의 오감을 넘어 갯지렁이나 로봇의 감각을 상상하며 감정을 이입한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여겨왔던 인간의 감각이 사실은 얼마나 협소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한다. 장애까지는 아니어도 노화는 시각과 청각을 약화시키게 마련이다. 침침해지는 감각을 슬퍼하지 말고 다른 풍성한 감각들을 찾는 즐거운 탐험에 나서면 좋겠다.

#과학적 창의성#감각#윌리엄 셰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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