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경기 가평을 오가며 도시에서 주중을, 지방에서 주말을 지내는 ‘5도2촌’ 생활을 하고 있다. 가평 생활은 모든 게 신기하고 재미있다. 구들장에 불을 피우고, 장작불에 고기를 구워 먹으며 앞산이 계절마다 옷을 바꿔 입는 걸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주말 동안 열심히 먹고 마시고, 마지막으로 쓰레기를 버리고 서울로 올라오는 게 시골 생활의 마무리였다.
처음에는 쓰레기를 분리수거해서 집 앞에 두고 왔다. 그런데 다음 주에 가보면 동네 고양이들이 쓰레기봉투를 파헤쳐서 엉망이 돼 있었다. 쓰레기봉투 안에 있는 생선이나 고기 뼈 때문에 그러나 보다 하고, 뼈는 별도로 담아서 버렸는데 그래도 쓰레기봉투를 파헤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행여 쓰레기 수거차가 쓰레기를 깜박하고 안 가져가면 다음 주에 왔을 때 쓰레기 냄새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동네의 일부 집에선 집 근처에 큰 쓰레기통을 마련해 두고 쓰레기를 모아서 태우기도 한다. 그러나 냄새도 안 좋고 화재 위험도 있어서 나는 가급적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버리는 방법을 택했다. 쓰레기 때문에 고민하다가 다른 집은 어떻게 하나 궁금해서 동네 마실을 다니며 살펴봤는데 마침 동네에서 공동으로 이용하는 쓰레기 처리 장소가 있었다. 우리 집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이라 거리는 좀 멀었지만 그래도 그곳에 쓰레기를 버리고 나면 고양이 걱정은 안 해도 됐다. 친구네 가족이 놀러왔을 때 쓰레기 버리는 곳이 멀다고 하면 대부분 “이래서 시골 생활은 힘들어”라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시골 생활 2년 차 입장에서 생각하면 조금 거리가 멀더라도 쓰레기는 먼 곳에 버리는 게 좋다. 대문 앞에 내놓으면 당장은 편하고 좋겠지만 고양이들의 습격도 걱정해야 하고 술 취한 사람들의 괜한 화풀이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길이 멀다 보니 가면서 별별 생각들을 다 하게 된다. 특히 내 마음속에 어지럽게 떠다니고 있는 쓸데없는 잡념, 쓰레기 같은 생각들. ‘어떻게 하면 버릴 수 있을까.’ 이미 지난 일이고, 다 끝난 일인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만났지만 변해버린 관계들, 처음에는 인연인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악연 같은 관계들. 한번 사기꾼은 영원한 사기꾼이고, 한번 배신한 사람은 또 배신하게 돼 있다. 그런데 그놈의 정이 뭔지, 쓰레기 같은 인간관계를 모질게 끊어내지 못하고 결국 내 가까운 곳에 두게 된다. 나중에 필요할 때가 있겠지, 언젠가 정신 차리고 은혜 갚을 날이 오겠지.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결국 가까운 곳에 버린 쓰레기는 썩어서 냄새가 나고 결국 나와 내 주변 사람에게 또 다른 피해를 줄 뿐이다.
마침 설날이 지났고, 또 한번 새로운 다짐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 버리러 가는 길이 멀고 고되더라도 쓰레기는 최대한 먼 곳에 버리자.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있는 앙금. 그건 분명, 내 안에 있는 쓰레기를 먼 곳에 버리지 않고 내 근처에 버렸기 때문에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었다. 마음속에 찌꺼기가 있다면 멀리 갖다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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