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광산 논쟁, 강제징용 진실 알리는 기회 될 수 있다[동아광장/박상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5일 03시 00분


日 조선인 강제 노역 광산 세계문화유산 신청
‘위안부 광고’ 망신에서 교훈 얻지 못한 우익
강제 징용 역사 감춘다고 日 명예 지켜지지 않아
韓 객관적 진실 공개 조건 내걸고 합의 나서야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2007년 6월 14일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The Facts”라는 의견 광고가 실렸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부정하는 내용으로 ‘역사사실위원회’라는 일본의 우익단체가 낸 광고였다. 미 하원에 상정돼 있는 ‘위안부에 대한 사죄 결의안’이 본회의에서 채택되는 것을 막기 위한 시도였지만 결의안은 결국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2010년 미 뉴저지의 한 공원에 위안부 추모비가 세워졌다. 2012년 일본은 추모비를 제거하는 대가로 100그루의 벗나무 기증을 제안했지만 공원 관리자들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 뒤, 역사사실위원회는 뉴저지의 한 신문에 5년 전과 대동소이한 내용의 광고를 실었고 5년 전과 마찬가지로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됐다. 광고에 찬동하는 정치인 리스트에는 아베 신조와 다카이치 사나에가 포함돼 있었다. 아베는 총리직에서 물러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의 수장이다. 다카이치는 자민당의 요직인 정조회장을 맡고 있다.

2월 1일 일본 정부는 니가타현에 있는 사도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추천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했다. 그 광산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 노동에 동원된 역사가 있는 곳이다. 사도광산의 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한다는 소식을 접한 한국 정부가 강제 노동의 역사를 지적하며 항의하자 일본 정부는 추진을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아베와 다카이치 등의 우익 정치인이 강하게 반발하자, 결국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당초 계획대로 추천서를 제출했다.

한국 때문에 문화유산 추진을 보류하는 것은 일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아베와 다카이치를 보며 그들이 위안부 광고의 실패에서 아무 교훈도 얻지 못했구나 싶어 입맛이 썼다. 이미 일본의 명예를 실추시킨 전력이 있는 이들이 또다시 일본을 국제사회의 망신거리로 만들려 하고 있다. 일본의 친구들을 생각하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2015년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도 지금과 같은 논란이 있었다. 조선인 노동자들의 강제 징용 역사가 문제가 되자 일본 정부는 그 사실을 전시 내용에 포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당시 총리는 아베였고, 그는 강제 징용의 역사를 감추는 것이 일본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작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이 군함도 등에서 벌어진 조선인 강제 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담긴 결정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일본의 명예는 지켜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사도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 한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등재 자체를 반대할 필요는 없다. 아름다운 역사를 가진 유산만이 유네스코의 선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아우슈비츠는 1979년에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사실 아름답기만 한 역사를 가진 유산이 있기나 하겠는가. 그리고 왕족의 유배지였던 사도섬은 광산뿐만 아니라 독특한 풍물로도 유명하다. 등재를 반대하기보다는 강제 노동의 역사를 방문객들에게 알리는 것을 조건으로 걸어야 한다. 군함도가 등재될 때 유네스코가 요구한 조건이다. 일본이 그때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도 문제 삼아야 한다. 강제 징용의 비극이 영어와 일본어로 어떻게 기술돼야 하는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분명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일본을 모독하거나 과거에 대한 분풀이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했던 불행한 역사를 알아야 그 불행이 반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심에는 역사의 진실을 직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군함도와 사도광산과 관련해 일본 언론과 야당에서도 우익의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내가 일본을 미워하지 않는 이유다.

일본 우익은 강제 노동의 역사를 부인하거나 축소하려 할 것이다. 이미 일본에서 한국이 일본을 중상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과거의 피해를 절대로 과장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지금도 남아 있는 당시의 기록과 일본인 연구자들의 연구물을 철저히 객관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번 일을 반일이나 국내 정치의 도구로 쓰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일이다. 어제 구성된 태스크포스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추진은 진실을 알리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사도광산#논쟁#강제징용#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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