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집값 하락기 대출 푼다는 李·尹, 청년들 빚더미에 앉힐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7일 00시 00분


잠실 아파트 전경. 동아일보 DB
잠실 아파트 전경. 동아일보 DB
주택 경기가 급속하게 꺼지고 있다. 어제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서울 아파트값이 20개월 만에 하락한 데 이어 31일에는 수도권 아파트값이 30개월 만에 하락세를 보였다. 여기에 작년 말 전국 미분양 주택은 전달보다 25.7% 증가했고 올 1월 수도권 아파트 청약 경쟁률이 지난해 평균치의 절반에 그쳤다. 지난해 10월 금융위원회의 대출 규제 강화 이후 집값 상승폭이 둔화한 데 이어 부동산 하락기가 본격 도래한 것이다.

부동산 거품이 갑자기 꺼지면 빚으로 집을 산 사람들은 타격을 입게 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보고서에서 지방의 3억 원 이하 주택을 산 4가구 중 1가구꼴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평균 60%를 넘는다고 진단했다. 향후 적지 않은 대출에서 부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집값 하락에 따른 충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여야 대선 후보들은 거꾸로 대출 규제를 확 풀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달 청년 등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에 대해 LTV 규제를 90%까지 풀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앞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지난해 8월 신혼부부와 청년 무주택자 대상 LTV를 80%로 올리는 공약을 내놓았다. 3일 TV토론에서 이 후보는 LTV 90%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완화까지 거론했고 윤 후보는 기존 LTV 완화 입장을 고수했다.

두 후보의 대출 규제 완화 공약이 대출 길이 막힌 청년들의 숨통을 틔워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출 완화는 금리 하락과 집값 상승기에는 통할 수 있어도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이 겹친 시기에는 잘못된 신호만 줄 수 있다. 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아파트를 산 사람 가운데 2030세대의 비중이 31%로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영끌 매수’로 집을 산 청년층이 많은 상황에서 대출 완화는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다.

청년과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해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모든 정권의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가계부채는 작년 말 기준 1060조 원에 이른다.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한국의 가계부채 수준이 은행권의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요인이라고 지적할 정도다. 위험 신호가 크게 울리는데도 대출 완화를 주장하는 공약은 무책임할 뿐 아니라 가계부채 리스크를 줄이려는 정부 정책과도 정면충돌한다. 대선 후보들은 지금 눈앞에 닥친 위험 요인인 ‘회색코뿔소’를 외면하고 있다.
#주택 경기#집값 하락기#대출 규제#불길에 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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