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 들어서니 빈민가 범죄 줄었다[임형남·노은주의 혁신을 짓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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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건축가 그룹 ‘헤르조그 앤드 드뫼롱’이 설계해 2014년 브라질 망이 루이자 지역에 들어선 체육관 ‘아레나 두 모후’의 내부(위 사진). 다양한 문화, 체육, 사회 행사가 열리며 지역 공동체가 되살아났고, 폭력 사건도 눈에 띄게 줄었다. 작은 사진은 ‘아레나 두 모후’의 외경과 인근 빈민가의 모습. ‘헤르조그 앤드 드뫼롱’ 홈페이지
스위스 건축가 그룹 ‘헤르조그 앤드 드뫼롱’이 설계해 2014년 브라질 망이 루이자 지역에 들어선 체육관 ‘아레나 두 모후’의 내부(위 사진). 다양한 문화, 체육, 사회 행사가 열리며 지역 공동체가 되살아났고, 폭력 사건도 눈에 띄게 줄었다. 작은 사진은 ‘아레나 두 모후’의 외경과 인근 빈민가의 모습. ‘헤르조그 앤드 드뫼롱’ 홈페이지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2008년 여름올림픽에 이어 2022년 겨울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은 얇은 금속 프레임이 복잡하게 얽힌 이색적인 형태로 인해 ‘새둥지’라고 불린다. 이곳은 전통 스포츠뿐 아니라 e스포츠 경기장으로도 사용된다. 2017년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의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이 이곳에서 열려 전 세계 5700만 명의 관중이 온라인으로 관람했다. 올림픽 경기가 열렸던 스포츠 경기장이 가상현실 속 게임을 관람하는 새로운 용도의 건축으로 전환되는 것은, 건축물의 목적과 용도가 고정되지 않고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앞으로의 건축에는 이렇듯 보다 다양한 가능성이 요구된다.

이 경기장을 설계한 스위스 건축가 그룹 ‘헤르조그 앤드 드뫼롱(Herzog & de Meuron)’은 재료와 구조를 새롭게 탐구하고 독특한 해법을 찾는 도전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정교하고 기계적인 산업이 발달해서인지 스위스는 인구가 900만 명에 불과한데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가 많은 편이다. 현대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코르뷔지에와 2009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페터 춤토어가 대표적이다. 헤르조그 앤드 드뫼롱 또한 2001년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서울 강남구 교보빌딩과 경기 화성시 남양 성모마리아 대성당을 설계한 마리오 보타도 빼놓을 수 없다.

유년시절부터 친구인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뫼롱은 같은 대학을 나와 1978년부터 함께 사무소를 운영해 오고 있다. 그들은 “건축물이란 상황에 따라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인식되고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건축이 특정한 개념으로 규정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영국 런던 남부 뱅크사이드에 있는 화력발전소를 현대미술 전문 미술관으로 개조해 낙후지역도 되살린 ‘테이트 모던’이나 2006 독일 월드컵 개막전이 열린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도 이들의 작업이다.

알리안츠 아레나는 연고팀이 두 곳인데, 바이에른 뮌헨의 경기 때는 외피가 붉은색으로, TSV1860 뮌헨이 경기할 때는 파란색으로 바뀐다. 덕분에 멀리서 봐도 어떤 팀의 경기가 열리는지 알 수 있다. 이 외피는 에어쿠션 2874개가 모인 집합체로, 총 6만4000m²의 면적이 단 0.2mm 두께의 포일로 둘러싸여 있다. 두 사람은 2020년 나선형 계단과 뾰족한 예각형태의 외관이 인상적인 강남구 도산대로의 송은문화재단 신사옥을 설계하기도 했다.

이들이 설계한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아레나’가 있다. 2014년 브라질 망이 루이자 지역에 들어선 ‘아레나 두 모후(arena do morro)’다. 이 시설은 도시에서 벗어난 빈민지역과 자연보호구역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낙후된 지역의 청소년들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희망을 품기 어려운 환경에 좌절하며 쉽게 범죄에 빠져든다. 스위스 개발원조기관인 아메로파 재단은 지역 공립학교 부지 일부에 청소년을 위한 건축물을 세우기로 한다. 재단 기부금으로 공사비를 마련한 이들은 헤르조그 앤드 드뫼롱에 사회적 의미를 지닌, 새롭고 참신한 도시공간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다.

아레나 두 모후의 주요한 용도는 다양한 공공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개방형 체육관이다. 지붕이나 벽 없이 기둥과 콘크리트로 이뤄진 기존의 오래된 체육관 구조를 그대로 살렸다. 새로운 영역은 날개 같기도 하고 커다란 우산 같기도 한 엄청난 크기의 지붕으로 덮었다. 브라질 북동부 지역은 공공 공간을 만들기 위해 커다란 지붕을 사용하는 전통이 있는데, 그런 방식을 차용해 도시의 새로운 상징을 만든 것이다.

모래 언덕 위에서 굽이치는 벽을 덮은 커다란 지붕은 멀리서 보면 지나치게 커 보이기도 하지만 지상에서 보면 안온한 느낌을 준다. 대각선 방향의 패널을 연속해서 겹친 지붕은 빗물 유입을 방지하는 동시에 햇빛을 전달한다. 그 아래 420명이 앉을 수 있는 경기장 관람석과 교육을 위한 다목적실, 탈의실, 공중화장실, 그리고 바다 쪽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테라스가 있다. 내부 공간은 지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콘크리트 블록 벽으로 구분 지었는데, 마치 잃어버린 퍼즐 조각처럼 부지의 가장자리에 있는 넓은 공터를 영역 안으로 끌어들인다.

완성된 시설은 멀리서도 눈에 띄는 새로운 사회적 체험의 장소가 됐다. 아레나 두 모후가 들어선 지 2년 만에 지역 폭력사건 빈도가 확연히 줄었다고 한다. 건축물이 국제 잡지에 연이어 소개되면서 다양한 관심을 불렀고, 2016년 피츠버그 카네기 미술관에서 전시된 것을 계기로 학교 건축에 대한 추가 계획도 수립됐다.

주최 측인 아메로파 재단은 “스포츠 및 문화 활동을 위해 지어진 아레나 두 모후는 인본주의적이고 현대적인 메시지로 도시와 브라질 전체에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아레나 두 모후가 공동체를 되살리는 데서 나아가 지역사회 운동의 생성에도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헤르조그 앤드 드뫼롱의 사회적 기여에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정직한 뼈대와 소박한 외피로도 인간, 지역, 도시를 살리는 건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건축의 사회적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체육관#빈민가 범죄#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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