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 시간) 미군의 이슬람국가(IS) 수괴 제거 작전이 끝난 자리에는 어린아이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무너진 벽돌 더미 사이로 불에 탄 봉제 토끼 인형과 나무로 된 아기침대, 분홍색 반짝이 샌들이 있었다. 폭탄 파편에 으스러진 벽에는 파란 플라스틱으로 된 유아용 그네가 매달려 있었다.
IS의 수괴인 아부 이브라힘 알하시미 알쿠라이시는 시리아 북서부의 한 마을에 숨어 지냈다. 은신처인 3층짜리 벽돌집에는 어린이 10여 명도 함께 살았다. 알쿠라이시가 미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인간 방패’로 동원한 자신과 부하의 자녀들이었다. 1층에는 그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평범한 시리아인 일가족이 살았다.
미군은 한 달 전에 이미 알쿠라이시의 위치를 확인하고도 어린이와 여성의 희생을 우려해 헬기 공습을 하지 못했다. 그 대신 아군의 위험 부담이 큰 특수부대 투입을 결정했다.
3일 새벽, 대원들이 은신처를 에워싸자 아랍어 통역관의 확성기 방송이 울려 퍼졌다. “항복하고 나오면 모두 안전할 것이다. 나오지 않는 자는 죽는다.”
3층에 있던 알쿠라이시는 가족들에게 살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이들을 옆에 둔 채로 자폭을 택했다. 굉음과 함께 창밖으로 시신들이 튕겨져 나갔다. 어린이 6명을 포함해 최소 13명이 즉사했다. 생후 15일 된 아기 등 어린이 4명은 구조됐다.
어린이를 ‘인간 방패’로 활용하는 것은 IS의 전술 중 하나다. 이들에게 아이들은 ‘전쟁에 쓰이는 장작(firewood)’이라는 말도 있다. 2017년 IS 근거지였던 이라크 북부 도시 모술에서는 허리에 폭탄을 두른 7세 남자아이가 이라크 정부군에 발견됐다. IS 대원들이 이동할 땐 서방 연합군의 드론 공격을 피하기 위해 어린이와 여성을 동행시키기도 했다.
이런 비겁한 전술을 쓰는 건 IS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는 시민들의 무장 반격을 무력화하기 위해 민가에서 납치한 어린이와 여성들을 최전선에 앞세우고 총격전을 벌였다.
시리아 정부군도 2012년 반군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8∼13세 아이들을 집에서 끌어내 탱크나 정부군 수송 버스 앞에 묶었다. 탈레반은 2010년 미군과 교전하다 후퇴하면서 어린이 5명의 어깨를 나란히 묶어 미군 앞에 세웠다. 아이들이 뒤를 볼 수도, 뿔뿔이 도망칠 수도 없게 잡아놓은 것이다.
전쟁의 참화 속에 있는 어린이의 모습은 인류를 각성하게 해왔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72년 미군의 네이팜탄 오폭으로 온몸에 화상을 입어 옷을 모조리 찢어버리고 알몸으로 내달리던 9세 베트남 소녀의 사진을 우리는 기억한다. 1984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카메라를 또렷이 응시하던 12세 아프간 소녀의 초록빛 눈동자 역시 이 전쟁에 무관심했던 세계인들에게 울림을 줬다. 2015년 터키 해변에서 얼굴을 파묻은 채 시신으로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알란 쿠르디는 유럽의 난민 정책에 변화를 불러왔다.
사람은 고난에 처한 어린이를 보면 아무리 먼 나라 일이라도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지켜주고 싶은 본능이 발동한다. 아이에게 초점을 맞춘 전쟁 사진들이 우리 기억 속에 오래 각인되는 것도 그런 흡인력 때문일 것이다.
미군의 알쿠라이시 제거 작전 직후 현장에서 촬영된 사진에는 아이들이 나오지 않는다. 반파된 건물 내부의 빨랫줄에 길이가 제각각인 아동복 바지들이 유품처럼 걸려 있을 뿐이다. IS 수괴 은신처의 널브러진 세간 사진을 보고 있자면 그의 자폭으로 날벼락 같은 최후를 맞았을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인간 방패는 사람의 본성을 역이용하는 일부 세력의 극악함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어른이 살자고 아이를 사지로 내모는 이 야만은 전쟁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어떠한 전쟁에서든 어른들의 결정으로 아이들이 목숨을 빼앗긴다. 그런 수많은 무고한 죽음들로 전쟁은 구성될 수밖에 없다. 현재 일촉즉발의 상황인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난다면, 그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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