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많은 대표소송 지침, 급하게 개정할 이유 없다[광화문에서/송충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12일 03시 00분


송충현 산업1부 기자
송충현 산업1부 기자
“대표소송을 수탁자책임위원회(수탁위)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아직 공식적으로 철회된 건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관계 부처 등에 재계 의견을 전달하겠습니다.”(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이달 25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주주 대표소송의 결정 주체를 수탁자로 일원화하는 내용의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 개정이 논의된다. 기금운용위원회를 앞두고 기업들 사이에선 대표소송 결정의 책임을 수탁위에 넘기면 소송 오·남용의 가능성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재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 안팎에선 25일 기금운용위에서 개정이 보류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반(反)기업 정서를 굳이 자극할 필요가 없다며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내심 안도하면서도 정부나 국민연금의 공식 입장이 나오지 않은 만큼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주주 대표소송은 기업의 주주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경영진의 경영 활동에 대해 소송을 거는 제도다. 경영과 관련한 결정이 회사에 손해를 입힐 경우 주주들이 소송을 통해 손해액을 만회하는 구조다. 2018년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후 국민연금은 주주 대표소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변경해 왔지만 아직 대표소송을 제기한 적은 없다.

기업들 역시 대표소송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건 아니다. 대표소송의 취지엔 동의할 수 있지만 소송의 권한을 자문기구 격인 수탁위에 넘기는 게 정당한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기금운용본부가 직접 소송에 나설 경우 주주의 이익이나 기금 수익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소송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지만 기금 운용과 관련이 없는 수탁위의 경우 소송 결정에 외부 요인이 개입할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급하게 수탁위 지침을 개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불만도 있다. 유가 급등과 공급난으로 경영 환경이 불안한 상황에서 재계의 우려를 뒤로하고 대선 전 굳이 지침을 바꿀 이유가 없지 않으냐는 게 재계의 설명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선이 끝나면 위원들이 물갈이될 것이란 전망이 있다”며 “그래서 대선 전 지침을 바꿔 대표소송을 진행하려 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측은 “아직 위원들의 임기가 남은 상황”이라며 말을 아꼈다.

법으로 보장된 주주의 권리를 통해 주주 가치를 회복하려는 시도는 존중돼야 한다. 회사 임직원이 기업에 손해를 입혔는데 회사가 미온적이라면 주주가 대신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도 보장받아야 한다. 다만 기업들은 주주인 국민연금이 직접 책임 의식을 가지고 기업과 주주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대표소송을 결정하길 바라고 있다. 기업과 주주의 가치를 담보로 한 소송의 권한과 책임을 분리하지 말자는 취지다. 소송을 제기하기까지의 과정이 명확해야 소송 후에도 대표소송이 포퓰리즘의 수단으로 악용됐다는 불필요한 오해나 논란이 줄어들 수 있음을 정부와 국민연금 측은 명심해야 한다.

#대표소송 지침#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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