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 충격에 빠져들고 있다. 에너지·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미국 1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7.5% 상승했다. 40년 만의 최고 상승폭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1월 소비자 물가도 5.1% 올라 집계가 시작된 1997년 이후 최고였다. 한국의 소비자 물가는 4개월 연속 3%대이고, 정부가 4월 이후로 미뤄놓은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이 시작되면 물가는 더 가파르게 오를 것이다.
더 심각한 건 물가 상승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최근 물가 상승 압력은 석유류, 식료품에 국한되지 않고 내구재 등 전방위로 번지고 있다. 소비는 회복되는데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경색은 풀리지 않고, 원유생산량 확대도 지지부진해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천연가스의 43%를 공급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1970년대 오일쇼크에 버금가는 충격이 세계 경제를 덮칠 수 있다.
물가 상승기에 먼저 고통받는 건 서민이다. 미국에선 생활물가가 임금보다 빠르게 오르면서 실질소득이 감소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죽기 살기로 물가를 잡겠다”고 한 이유다.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한국 기업들의 타격도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들어 이달 10일까지 무역수지 적자는 80억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 9억5400만 달러 흑자에서 급속히 악화됐다.
제로(0)금리를 유지해온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다음 달 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올릴 가능성도 높아졌다. 각국 정부, 중앙은행들은 재정지출을 줄이고 금리를 높이는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그런데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권은 수조∼수십조 원 들어갈 퍼주기 공약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현 정부가 뒤늦게 주택 공급을 확대한 영향으로 올해 3기 신도시 토지 보상에 30조 원 넘는 돈이 풀리는 등 물가 상승 요인들이 산적해 있다.
한국 경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원유 의존도가 제일 높아 고유가가 지속될 경우 치명타를 받을 수 있다. 금리 인상으로 자산가격까지 하락한다면 소비가 위축돼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에 빠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기존 예산지출은 줄이지 않으면서 빚을 내 추가경정예산을 확대하라고 정치권이 정부를 압박해도 될 만큼 한가로운 상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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