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문병기]바이든과 외교 데뷔전, 누가 준비됐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14일 03시 00분


초유의 새 정부 출범 직후 美 대통령 방한
대선 후보들, 中견제 요구 헤쳐갈 준비 의문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2017년 6월 29일. 취임 51일 만에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첫 한미 정상회담 하루 전인 이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상견례를 했다. 미리 백악관을 나와 차에서 내리는 문 대통령 내외를 반갑게 맞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환하게 웃으며 기념촬영을 마치고 문 대통령을 정중하게 백악관 안으로 안내했다. 상견례를 마친 후 청와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 3층에 있는 사적 공간인 트리티룸을 공개하는 등 문 대통령에게 각별한 예우를 보였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한미 정상의 첫 상견례를 가까이서 지켜본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아찔했다”고 회고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백악관 안에 들어서자 ‘따로 대화를 갖자’며 트리티룸으로 문 대통령을 안내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10여 개의 질문을 쏟아냈다고 한다. ‘주한미군이 공짜로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김정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는 왜 예정대로 진행하지 않느냐’는 등 당시 한미 관계의 민감한 현안들을 마치 면접하듯 꼬치꼬치 캐물었다는 것. 첫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했던 한 인사는 “돌이켜보면 첫 만남에서 쌓인 인상과 대화가 이후 한미 관계의 많은 것을 좌우했다”고 말했다.

5년이 다 돼가는 일화가 떠오른 것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5월 말 방한해 새로 취임할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갖는 방안이 유력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벌써 걱정의 목소리가 나온다. 무엇보다 대선 일정을 감안할 때 정상회담을 준비할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는 지적이다. 3·9대선에서 선출된 새 대통령은 인수위원회 기간을 거쳐 5월 10일 취임한다. 취임 후 10여 일 내에 첫 정상회담에 나서야 하는 셈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취임 후 가장 이른 시기에 한미 정상회담을 가졌던 문 대통령의 기록이 절반 이하로 단축되는 것. 더욱이 한국 대통령의 방미와 미국 대통령의 방한은 준비해야 하는 경호, 의전의 수위가 하늘과 땅 차이다.

새 정부 조직 개편과 인사도 촉박한 한미 정상회담 일정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인수위 기간 중 주무장관인 외교부 장관을 지명한다 해도 실제 임명은 취임 이후가 될 수밖에 없는 만큼 새 정부가 제대로 된 방한 준비에 나서기도 어렵다.

미국이 준비할 의제들을 떠올려보면 우려는 더욱 커진다.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을 서두르는 것은 일본에서 열리는 쿼드(QUAD) 정상회의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다. 한 외교 소식통은 “고령으로 잦은 여행이 힘든 바이든 대통령의 상황을 고려하면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은 ‘나우 오어 네버(Now or never·지금 아니면 없다)’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중국 견제에 사활을 건 바이든 대통령은 새 대통령에게 중국 견제 동참, 한일 관계 개선 등 그동안 묵혀뒀던 요구를 쏟아낼 것으로 보인다. 5년 임기 내내 새 정부 외교 정책의 명운을 가를 폭발력 있는 이슈들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해외 정상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중시한다는 평가다. ‘사람이 곧 외교’인 셈이다. 하지만 대선 레이스에서 선두를 다투는 여야 후보들 모두 외교 무대에선 검증된 적이 없는 백지 상태다. 새 대통령은 미중 줄타기 외교가 발붙일 곳이 좁아지는 위기의 순간, 외교 백전노장인 바이든 대통령을 맞아 성공적인 외교 데뷔전을 치를 수 있을까. 3·9대선 전 꼭 검증해 봐야 할 선택의 기준일지 모른다.

#조 바이든#문재인#한미 성장회담#외교 데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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