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마지막 결론은 이렇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 얻어야 하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위험에 둘러싸여 아이, 어른, 노인 모두가 값진 나날을 보낼 것이니, … 그 순간을 향해 나는 말할 수 있으리, ‘머물러라, 너 그렇게 아름답구나’.”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중
독문학 교수라면 모두 괴테를 잘 알고 있을 것 같지만, 독일 현대문학 전공자로서 괴테라는 세기의 거장은 솔직히 어렵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대학 시절 수업에서 만났던 이 문장은 아직도 계속 떠오른다. 악마와 계약을 맺고 여러 가지 실험을 했던 파우스트의 이야기는 그가 사회적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하면서 최고점에 이른다. 한데 이 대목에서 나오는 유토피아의 모습이 이채롭다. 편안하고 나태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새로 간척한 땅에 세워져 매일 방파제 밖 거친 파도와 싸워 지켜내야 하는 유토피아이기 때문이다. 왜 굳이 힘들게 노력해야 유지되는 유토피아를 그렸을까?
그러고 보니 우리 사회는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곳곳에서 힘들게 싸워야 하는 것이 맞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도 이제는 힘들게 노력해야만 지탱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파우스트의 유토피아가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 구절 안에는 또 다른 반전이 있다. 파우스트는 희망찬 건설 현장의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지만 그것은 환상에 불과했다. 심지어 그 소리는 파우스트 자신의 관을 짜는 망치 소리였다. 괴테는 당시 인류가 진입했던 현대의 초입에서, 발전 일변도 시대의 허상을 미리 알아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고단하게 유지되는 이 유토피아 모델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작은 위안을 준다. 평온한 하루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당신이야말로 일상이라는 소중한 유토피아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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