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안정, 시장에 답 있다[오늘과 내일/김유영]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1일 03시 00분


지표상으로는 집값 상승세 꺾여
시장에 귀 기울여야 집값 잡는다

김유영 산업2부장
김유영 산업2부장
서울 강북구 삼양동 소나무협동마을은 요새 재개발 열기가 뜨겁다. 폭염이 극심했던 2018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옥탑방 한 달 살기’를 했던 곳이다. 당시 그는 “강북은 강남과 달라야 한다. 삼양동 고층 개발을 반대한다”며 주거 환경을 개선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골목을 포장해주고 나무 계단을 놓아줬으며 꽃과 나무도 심어줬다.

하지만 최근 3년여간 주민들은 삶이 나아졌다는 느낌은커녕 길 건너 고층 아파트들을 보며 더 큰 박탈감을 느껴야 했다. 결국 주민들은 재개발추진위원회를 꾸려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공공재개발 설명회를 듣는 것으로 재개발 추진을 본격화했다.

삼양동의 사례는 ‘책상머리 주거 대책’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울은 (아파트가 많아서) 천박한 도시”(여당 전 대표),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전 대통령정책실장),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장관 출신 여당 의원) 등 현 정부에서 잇따랐던 부동산 구설수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 짐작한다.

정부가 뒤늦게라도 공급의 중요성을 깨달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문제는 ‘어떻게’다. 지난해 2·4대책을 통해 도심 저층 주거지 등을 공공 주도로 재개발하겠다고 발표한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도심복합사업)’이 그렇다. 정부는 최근 대책 1주년을 맞이해 당초 목표의 절반을 넘긴 물량을 지을 후보지를 확보했다고 자평했지만 시장은 시큰둥하다. 사업이 가시화됐다고 할 만한 ‘본(本)지구’ 지정 지역의 물량은 당초 목표치의 5%에 그쳐 착공까지는 ‘산 넘어 산’이다.

이는 공공 주도로 재개발하면 용적률을 올려주고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해준다지만 공공성을 강화해야 하는 특성상 아무래도 사업성이 낮은 곳이 적지 않은 영향이 크다. 주택 공급이야 절실하지만 조합은 주판알을 튕긴다. 적정 이익이 보장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시장경제의 속성이다. 민간재건축의 경우에도 개발이익의 최대 절반까지 부담금으로 내야 하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가 현 정부에서 부활해 사업 추진 걸림돌로 꼽힌다.

현 정부 들어 지난해까지 집값이 크게 오른 것은 시장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않고 시장을 존중하지 않은 영향이 크다. 30년 가까이 부동산 현장에 몸담은 한 민간 연구소 원장은 역대 최장 국토교통부 장관의 재임 시 모습을 거의 못 봤다고 한다. 집값이 잡히지 않자 청와대가 전문가 회의를 열었지만 회의는 ‘답정너’ 형식이어서 나중엔 전문가들이 참여를 꺼렸다는 후문이다. 과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주재로 부동산 회의가 열린 적이 있는데 입맛에 맞는 선수만 채웠으니 듣기 좋은 말을 했을 공산이 크다. 진단을 잘못하면 정책도 잘못 나온다.

최근의 아파트값은 간만에 상승세가 꺾였다. 현 정부가 대대적으로 타깃으로 삼았던 서울 강남구 아파트값까지 지표상으로는 떨어졌지만 이를 부동산 정책 성과로 보긴 힘들다. 집값이 그동안 너무 올랐던 데다 대출·세제 규제가 워낙 강해 이제라도 숨 고르기에 들어가는 게 당연하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대선 이후의 정책에 주목한다. 양대 대선 후보도 큰 틀에서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내걸어 정비사업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겠지만 시장 향방을 가늠하기는 힘들다. 부동산 정책에 정치논리를 들이대는 이상 시장에 역행하는 방안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실패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삼양동 재개발은 현재진행형이다.

#집값 안정#주거 대책#시장에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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