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정은]닉슨 방중 50주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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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만들어 냈는지도 모른다.” 중국 정책을 회고하던 말년의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슬픈 표정이었다. 중국이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에 대한 불안과 실망이 배어 있었다. 닉슨의 연설문 작성자가 기록했던 이 한마디는 30년 가까이 지나 미국이 대중 우호 정책의 종식을 선언하는 자리에 다시 소환됐다. “우리는 (중국이 괴물이 돼버린) 그 지점에 와 있다”는 답변의 형식으로.

▷닉슨이 20년간의 냉전을 깨고 극적인 중국 방문을 성사시켜 마오쩌둥 주석을 만난 지 21일로 50주년이 됐다. 1972년 2월 21일, 마오는 바닥까지 책이 가득한 자신의 서재에서 닉슨의 손을 맞잡았다. ‘폴로 1’로 명명된 헨리 키신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비밀스러운 베이징 방문을 통해 극비리에 진행된 물밑 작전의 결과였다. 8일간 이어진 닉슨의 방중 행보는 상하이 공동성명을 이끌어내며 미중 관계의 물꼬를 트는 동시에 고립된 중국을 외교무대로 복귀시켰다. 현대사의 가장 역사적인 장면들로 기록돼 있는 순간이다.

▷닉슨은 당시 ‘중국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포용 전략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10억 인구가 분노에 찬 고립 속에 살아갈 공간은 이 작은 지구상에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2020년, 미국은 닉슨의 대중 포용 정책이 목표했던 중국 내부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판단하에 이를 폐기하고 만다. 닉슨도서관 앞 연단을 굳이 발표 장소로 선택한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은 중국공산당을 ‘악성 변종(變種)’이라고 맹폭하며 대중 우호 정책의 종식을 공식 선언했다.

▷워싱턴에서는 닉슨의 데탕트 정책이 결과적으로 중국을 너무 키워줬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중국은 절대 슈퍼파워가 되지 못할 것”이라던 마오의 대미 유화 발언을 믿는 사람은 이제 없다. 키신저도 ‘중국의 실체를 수십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더 힐)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 행정부와 의회는 군사, 외교, 경제 등 전방위 분야에서 각종 견제 정책과 법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양국 우호외교의 상징이었던 판다를 중국으로 돌려보내지 못하도록 막자는 법안까지 발의됐다.

▷미국은 닉슨의 방중 50주년을 함께 기념하려는 중국 측의 은근한 제의도 외면했다. 주요 외교 기념일이면 어김없이 나오는 국무부의 성명이나 논평은 한 줄도 내놓지 않았다. 미중 갈등은 신흥 강대국이 부상해 강대국과 충돌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의 목전에서 ‘강대국 파워 경쟁’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앞으로도 수십 년간 지속될 것이라는 이 거대한 충돌 속에 한국의 설 자리도 좁아져만 간다.

#중국#닉슨#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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