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유재동]전쟁 위기에 유엔이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2일 03시 00분


잇단 비극과 참화에도 무기력한 모습
‘외교 실종’의 피해자는 약소국 국민들

유재동 뉴욕 특파원
유재동 뉴욕 특파원
뉴욕 맨해튼 동쪽 47번가에는 다그 함마르셸드 플라자라는 좁다란 광장이 있다. 바로 도로 건너편에 유엔본부가 있는 명당이라서 각종 단체의 집회와 행사가 연중 끊이지 않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가 열렸던 17일, 뉴욕의 우크라이나계 시민들이 모여 “전쟁을 막아 달라”고 외친 장소도 이곳이었다.

광장의 이름을 차지한 2대 유엔 사무총장 다그 함마르셸드(1953∼1961년 재임)는 역대 8명의 유엔 수장 중 가장 추앙받는 인물로 꼽힌다. 스웨덴 경제학자 출신으로 48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뒤 유엔의 위상을 강화하고 국제 분쟁을 적극 중재하는 데 힘썼다. 특히 상임이사국 등 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국제 평화와 안전이라는 대의(大義)를 밀어붙이는 모습은 후임자들의 귀감이 됐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은 위기가 생길 때마다 ‘함마르셸드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스스로에게 되물었고, 반기문 전 사무총장도 그를 존경했다고 한다. 함마르셸드는 1961년 콩고 내전을 중재하러 아프리카에 갔다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숨졌고 사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이런 그의 유산을 되짚어 보면 그 많은 집회가 이 광장에서 열리는 속뜻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아직도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비극과 참상에 유엔이 함마르셸드 때처럼 적극 나서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국제기구가 강대국들의 입김에 좌우되고, 그들의 국익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한계는 있다. 또 유엔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도출하는 장소보다는, 각국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선전 무대로 활용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전쟁의 참화와 인권 유린의 범죄에 맞서 아무런 역할도 못 한다면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최근 유엔은 미국 등 서방과 중국·러시아 간의 파워 게임 속에서 매번 무기력한 모습을 노출했다. 작년 초 미얀마 사태 때는 군부에 호의적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안보리가 침묵으로 일관했고, 그해 5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충돌 때는 미국이 이스라엘을 감싸고돌면서 공동성명조차 채택하지 못했다. 올 초 북한의 잇단 무력도발에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북한은 유엔을 비웃듯 자신들에 관한 안보리 회의가 열리는 날에 맞춰서 미사일을 쏴 올렸다. 이런 무력함을 예상했는지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회의장 밖에서 미리 준비한 대북 규탄 성명을 따로 발표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럽에서 30년 만에 전쟁이 임박했는데 대서양 건너 유엔에는 그 위기감이 전달되지 않는다. 안보리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이 문제로 수십 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어떤 의미 있는 합의에도 실패했다. 지난달 회의에서는 우크라이나 대사가 발언하려 하자 러시아 대사가 이에 항의해 퇴장해버리는, 냉전 시대에나 볼 수 있던 풍경이 재현됐다. 외교가 무너질 때 가장 위험해지는 것은 약소국의 국민들이다. 뉴욕의 우크라이나계 시민들은 고국에 있는 친지들의 안부가 걱정돼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유엔 안보리 회의실 외벽에는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대표작 ‘게르니카’의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다. 1937년 스페인 내전 때 나치의 폭격으로 수천 명이 죽은 비극을 묘사한 이 작품을 보면서, 유엔 외교관들은 평화를 향한 굳은 의지를 다진다고 한다. 불행한 것은 이런 다짐을 하기 위해 굳이 85년 전 일까지 끄집어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게르니카는 지금도 세상 도처에 있다.
#전쟁#유엔#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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