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과잉과 진주성의 비극[임용한의 전쟁사]〈200〉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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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이순신 장군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이 호남을 지켜낸 것이었다. 흔히 임진왜란의 3대첩으로 한산대첩, 진주대첩, 행주대첩을 꼽는데, 정작 행주대첩의 주인공인 권율은 행주대첩보다 이치 전투의 의미가 더 크다고 말했다. 행주를 이치 전투로 대체하면 3대첩 모두가 왜군의 호남행을 저지한 전투다.

왜군이 호남으로 달려들 것이라는 정도는 조선 정부도 충분히 예측했던 일이다. 정부는 육상에 방어 거점을 하나 육성하는데, 바로 진주성이었다. 진주성은 남쪽은 남강과 하안단구가 막아준다. 서쪽도 바위 절벽이다. 공격하기 쉬운 곳은 북쪽과 동쪽이다. 이곳에는 상당히 넓게 해자를 팠다. 우리나라 지형이 해자를 설치하기가 쉽지 않은데, 진주성의 해자는 특별했다.

약점이 있다면 성이 좁다는 것이었다. 확장을 하려니 가능한 곳이 동쪽뿐이었다. 정부는 동쪽으로 성벽을 확장하는데, 이게 치명적 실수가 된다. 면적만 넓혔을 뿐 해자를 약화시키고, 동쪽 지구를 취약하게 만들었다. 1차 진주성 전투에서 조선군은 극적으로 승리했지만 2차 전투에선 결국 이 약점이 불행을 초래한다. 전후에야 조선은 진주성을 제대로 개조하는데, 그 뒤로 진주성은 싸울 기회가 없었다. 정말 궁금하다. 왜 이렇게 어이없는 짓을 했을까? 가능한 추정은 전형적인 탁상공론과 행정주의다.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 병력을 늘린다. 병력이 느니 성을 넓힌다. 여기서 끝이다. 성의 구조적인 약화는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다. 반면 성을 보강하는 시간과 자원, 인력은 수치로 정해져 있다. 수령은 제한된 시간 내에 문서상의 과제를 완수했다. 정부는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충분하지 않은가? 괜히 정부의 지침에 지적질을 하고, 불필요한 사업을 벌여서 책임 추궁을 당할 필요가 있을까? 백번을 고쳐 생각해 보려고 해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과잉행정주의 속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정의로운 정부를 요구하지만, 진짜 문제는 과잉정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보약도 과용하면 독약이 된다.
#행정과잉#진주성의 비극#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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