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 회사에서 내 별명은 야식 소믈리에였다. 당시 라이프스타일 월간지는 야근이 잦았고 내가 있던 어느 신생 잡지는 조금 더 잦았다. 편집부 막내인 내가 야식을 시켰다. 밤이 깊어지면 거리의 가게에 불이 꺼지듯 모니터 속 주문 가능 업소도 줄어들었다. 끝까지 남은 메뉴 사이에 늘 아주 매운 떡볶이가 있었다. 주현미 노래 가사처럼 밤을 넘어 새벽으로 가는데도 일이 끝나지 않을 때 종종 그 떡볶이를 시켰다.
그때의 경험을 미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지친 채 모니터 앞에 앉아 있으면 전화가 왔다. 음식이 왔다고 말하는 라이더의 목소리 역시 지쳐 있었다. 건물 앞에서 비닐봉지를 들고 있는 라이더는 헬멧을 써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 꽉 묶여 매듭을 푸는 대신 잘라야 하는 비닐봉지에서 플라스틱 용기를 꺼내 두 겹 싸인 비닐 랩을 풀고 뚜껑을 열었다. 용암처럼 빨간 국물 사이로 매운 냄새가 코로나19 유전자증폭(PCR) 검사 면봉처럼 콧속 깊은 곳을 찔렀다. 지친 사람이 건네주는 음식을 지친 사람들이 받아 묵묵히 먹다 보면 더 지쳤다. 너무 매워서.
매운 떡볶이는 아주 매운 국물 속의 떡과 기름진 튀김과 달콤한 가향 음료수로 구성되어 있다. 매우니까 단걸 먹고, 다시 매운 걸 먹는다. 떡볶이는 부드러우니까 딱딱한 튀김을 먹고, 그걸 또 반복한다. 이러다 보면 유쾌하지 않은 포만감에 이른다. 이른바 강남의 야식이란 건 거의 그런 음식이다. 식사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위해서 지금까지 자지 않고 이 음식을 먹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몇 년이 지난 최근 일 때문에 떡볶이 요리 현장에 갔다. 장소는 논현동의 공유 주방. 간판 없는 건물 지하에 업소용 가스레인지와 철제 선반과 배기 설비가 늘어서 있었다. 거기서 떡볶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니 요리란 무엇인가 싶어졌다. 떡, 어묵, 파, 만두 등 재료를 무게별로 넣는다. 물과 소스를 넣는다. 끓인다. 끝. 요즘 프랜차이즈 떡볶이집 점주 대상 홍보 문구엔 라면보다 쉽다는 말이 적혀 있다. 내가 본바 그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밤의 배달 떡볶이는 현대 한국의 대도시 생활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 상징 요소란 비대면과 비숙련이다. 매운 떡볶이 한 그릇이 내게 오기까지 인간과의 직접 의사소통은 전혀 없다. 말도 글도 필요 없이 매운맛 정도만 고르면 된다. 떡볶이를 끓이는 배달 떡볶이 요리사와 심야 배달 라이더를 평생 직업 삼기는 무리다. 이처럼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연차가 쌓여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 당장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건강을 해칠 게 뻔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다. 배달 떡볶이 한 그릇에 도시 생활의 딜레마가 담겨 있다.
오늘날의 젊은이를 느껴보고 싶다면 늦은 밤 배달 앱으로 아주 매운 떡볶이를 시켜보시라 권하고 싶다. 주문부터 취식에 이르는 과정을 모두 자기 손으로 해 보신다면 지금 젊은이들의 난처한 마음을 이해하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몇 년 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나는 죽고 싶지도, 떡볶이를 먹고 싶지도 않다. 특히 심야의 배달 떡볶이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