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물가는 소비자를 가난하게 만든다. 커피 한 잔 값이 400원 오르면 매일 한 잔을 마실 때 연간 14만6000원을 더 내야 한다. 정부가 15만 원을 나눠줘도 오른 커피값으로 거의 다 사라지는 셈이다. 심각한 인플레는 서민의 적이다.
3%대 물가 상승세가 이어지자 박수현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13일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물가 관리 중”이라는 글을 올렸다. 물가 걱정을 달래려는 소통일 텐데 안일한 물가 인식도 드러냈다.
박 수석은 ‘40년 만에 7.5% 뛴 미 물가’ 신문 기사를 거론하며 “주부들이 이런 뉴스까지 접하고 나면 걱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언론 탓을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작년에 연간 2.5% 물가 상승을 기록해 다른 나라(미국 4.7%, 캐나다 3.4%, 독일 3.1%, 스페인 3.1%)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주부들이 체감하는 ‘밥상물가’(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물가)는 지난해 5.9% 뛰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물론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2%)보다 훨씬 높다. 장을 보며 늘 물가를 확인하는 ‘물가 9단’ 주부들에게 다른 나라보다 물가가 낮다고 하면 구중궁궐에 파묻혀 산단 말을 듣는다.
그는 ‘1월 소비자물가는 3.6% 상승했지만, 작년 12월 대비 0.1%포인트 하락한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역대 최고 규모인 20만4000t의 성수품을 풀어 물가 상승률을 0.1%포인트 떨어뜨린 게 동네방네 자랑할 일은 못 된다. 물가 상승률은 10년 만에 넉 달 연속 3%대이고 기획재정부는 “2월 물가도 어렵다”고 본다.
박 수석은 “작년 6월부터 금년 1월 말까지 대통령은 참모회의에서 무려 11회의 소비자물가 관련 지시를 쏟아냈다”고 했다. 이어 “매일 아침 열리는 참모회의에서 내가 경제수석을 부르는 말이 있는데, ‘계란 수석’이 그것”이라며 “그만큼 관련 물가가 대통령 앞에서 많이 보고되고 지시가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지시를 쏟아내도 물가가 잡히지 않는다는 건 문제가 간단치 않다는 뜻이다. 세계적 공급망 혼란과 국제유가 급등과 같은 외부요인 탓을 하고 기업 담합 핑계를 댈 수 있겠으나 그게 다는 아니다. 정부가 막대한 돈을 풀어서 생긴 ‘관제 인플레’를 빼놓고 물가 단속만 하면 ‘유체이탈’ 대책이다.
당정이 선거를 앞두고 6·25전쟁 이후 71년 만에 처음으로 ‘1월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추진했을 때 등 떠밀려 추경안을 들고나온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추경 규모가 더 늘면 물가에 대한 우려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걱정했다.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돈을 아낌없이 풀어야 한다고 믿는 현대통화이론 지지자들도 물가가 급등하면 돈 풀기 약발이 다한 것으로 본다. 그런데도 우린 역주행이다.
다음 달 결정될 차기 대통령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세계 경제의 변곡점을 목격할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위기와 원자재 가격 급등, 악화하는 무역수지, 불어나는 재정적자, 대선 뒤로 밀어놓은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 요구와 같은 난제에도 직면할 것이다. 물가 불안에 지친 서민의 분노는 정권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계란 수석’이지만 그땐 ‘계란 대통령’이란 말이 나올 것이다. 당선의 꿈에 취해 200조, 300조 원 선거 공약을 남발하며 풍선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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