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기차 회사인 테슬라의 기업가치는 작년 말, 자동차 업계 최초로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시장이 테슬라를 전기차 제조업체가 아닌 ‘인공지능(AI) 기업’으로 보기 때문이다. 테슬라가 제작한 AI와 자율주행 기술로 만들어낼 새로운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큰 것이다.
4차 산업의 혁명기는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이 바뀌는 대전환의 시기이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 빅블러(업종 간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 시대 등으로 표현되는 현재의 변화기에는 새로운 기술 못지않게 이를 담아낼 정책의 전환이 중요하다.
산업융합의 상징적 기업인 테슬라의 성장 배경에는 ‘규제혁신’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2016년 세계 최초로 연방 자율주행차량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전국의 일반 도로에서도 시범사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사람이 운전하지 않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제한을 가했다면 테슬라 같은 회사가 다른 국가에서 먼저 나왔을지도 모른다. 마치 19세기 말 영국이 마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 속도를 제한하는 ‘붉은 깃발 법’을 제정해 결국 자동차 산업 주도권을 독일과 미국에 내준 것처럼 말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지식재산(IP) 정책의 대전환’이다. 역사적으로 신기술에 대한 특허를 허용하면서 기술혁신이 촉발되고, 새로운 시장과 스타 기업이 탄생했다. 그러한 변화를 이끈 국가는 패권국가로 자리 잡았다. 미국은 1980년 세계 최초로 미생물과 유전자를 특허로 인정해 암젠, 제넨텍 등의 성장으로 생명공학기술(BT) 산업 시장을 장악했다. 정보기술(IT) 산업에서도 1981년 소프트웨어(SW)와 1988년 인터넷 기반 영업방법(BM)의 발명을 특허로 인정하는 정책 전환을 통해 FAANG(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등 빅테크 기업의 성장을 이끌었다. 미국은 IT, BT 산업 강점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면서 미래 패권을 쥐게 됐다.
작년 코로나 백신 확보를 위한 백신 특허 면제 논쟁에서 보듯이, 기술패권 시대에 지식재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AI, 메타버스 등 신산업·신기술 분야에서 시장을 선점할 만한 지식재산 정책을 발굴해야 한다. 또 기술과 업종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신제품과 서비스가 부처 간 이견 등으로 지연되거나 사장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영국 등 주요 혁신국처럼 지식재산처를 신설해 산업융합을 촉진하고 지식재산 융합화 트렌드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신산업 진입 규제 수준이 60여 개국 중 40위에 불과할 정도로 규제 후진국이다. 창의적 아이디어가 신기술과 만나 새로운 시장을 열어 갈 수 있도록 ‘규제 혁파’와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에 힘을 모아야 한다. 시장은 한국 밖에 있다. 우리를 갈라파고스화하는 내수지향적 폐쇄정책은 금물이다. 글로벌 표준을 주도하고 시대 경쟁을 선도할 수 있는 개방, 개혁적 규제정책, 지재권 정책만이 대전환의 시기에 우리를 승자의 길로 이끌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