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가 말로는 ‘규제 혁파’를 강조해 왔지만 법 개정보다 손쉬운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한 ‘우회 규제’를 양산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공동으로 분석한 결과 현 정부 들어 신설, 강화된 규제 5798건 중 86.9%는 이렇게 시행령, 시행규칙 등 하위 법령을 고쳐 도입한 것이었다. 73.8%였던 이명박 정부, 77.9%의 박근혜 정부보다 비중이 커졌다.
사외이사 재직기한 6년 제한, ‘관공서 공휴일’의 유급휴일 의무화 등은 민간기업의 경영에 부담을 주는 중대한 사안인데도 입법 절차 없이 우회 규제를 통해 속전속결로 도입됐다. 규제 신설로 피해를 볼 당사자들이 국회 법안심사 과정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피력할 기회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꼼수’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국민 생활이나 기업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규제는 ‘중요 규제’로 분류해서 규제개혁심의위원회 본회의 등을 거쳐야 하는데, 이를 피해 가는 사례도 많았다. 남녀고용평등법 적용 범위를 5인 미만 전체 사업장으로 확대하는 시행령 개정안은 적용 사업장 수가 100만 개가 넘는데도 ‘비중요 규제’로 분류됐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강화하고, 대기업집단 공익법인의 의결권을 제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재계의 반대가 많은 사안이었는데도 규개위 본심사를 거치지 않은 채 재작년 말 국회에서 통과됐다.
현 정부가 혁신성장, 규제개혁의 실적으로 자랑하는 규제 샌드박스도 성과가 신통치 않다. 3년간 대상으로 선정된 사업 600여 건 가운데 실제로 규제가 개선된 건 20%에 불과하다고 한다. 반면 40% 이상은 서비스를 시작하지 못했거나 사업을 포기했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부처가 낀 겹겹 규제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벤처 분야에서는 국내 규제를 피해 해외에 나가 창업하려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기업들이 규제에 가로막혀 혁신을 포기하면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서 헤매게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30년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할 정도로 성장엔진은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앞에선 풀겠다고 약속하고 뒤에선 묶는 꼼수 규제는 정책의 불확실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이중의 해악이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혁명이 아닌 ‘규제혁명’이라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이 더딘 이유가 달리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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