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악(姑惡), 고악!’ 하며 우는 물새가 있었다. 뻐꾸기나 뜸부기처럼 울음소리에서 유래한 이름인데, 민간에서는 시어머니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끊은 며느리가 환생한 게 곧 고악새라는 전설이 나돌았다. 고부 갈등이 빚어낸 묵은 원한들이 쌓인 탓일까. 고악새의 울음에서 사람들은 ‘시어미(姑)가 고약하다(惡)’는 의미를 읽어냈다.
시에 딸린 시인의 설명. 강변에서 고악새 울음소리를 듣고 마음이 짠했는데, 마침 한 나그네가 이 새는 불효한 며느리의 화신일 거라고 투덜댔다는 것이다. 그 나그네는 ‘며느리 못됐다는 시어머니 말은 근거가 있지만, 시어미 고약하다는 며느리 말이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억지까지 부렸다. 시인이 며느리를 편들어 혼잣말처럼 내뱉는다. ‘시어미가 고약하지 않다면 며느리는 죽지 않았을’ 거라고. 사후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은 것도 못마땅하다. 분위기로 보면 나그네를 호되게 질책할 법도 한데 속으로만 며느리 옹호의 변을 되뇌고 있다. 허나 예교주의 사회에서 이 정도 며느리 역성드는 사대부도 흔치는 않았을 테다. 소동파만 해도 그랬다. 그는 ‘고악, 고악! 시어미가 고약한 게 아니라 며느리가 박명한 거지’라는 시구를 남겼다. 운명론적으로 치부해버린 동파에 비해 범성대 시에는 옅으나마 인간미가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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