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인을 데리고 현대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를 깔끔하게 포착한 한 장소에 데려가야 한다면 공항의 출발과 도착 라운지밖에 없다.”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에세이 ‘공항에서 일주일을’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는 대합실 한가운데 책상을 놓고 공항을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해 책까지 썼지만,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어림없는 소리다. 인천공항은 신학기를 앞둔 성수기임에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한산하다. 하지만 덕분에 미술품을 감상하면서 ‘아트포트(Artport·예술공항)’의 진수를 느끼기에 충분할 만큼 쾌적하기도 하니, 세상 모든 일에는 앞뒷면이 있다.
2018년 1월 문을 열 때부터 예술 친화적 면모를 내세운 제2여객터미널 4·5번 출입구에서는 커다란 모빌 작품 ‘그레이트 모빌(Great Mobile)’이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적 방식으로 조각, 회화, 영상 등을 두루 작업해온 프랑스 미술가 그자비에 베양의 이 작품은 계단과 에스컬레이터의 수직 통로 2, 3층을 종으로 연결한다. 모빌은 공기 흐름에 따라 느릿하게 움직이며 빈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모빌은 사람들의 움직임, 유리 창 너머의 일상과 겹쳐지면서 ‘21세기의 가장 형이상학적 공간’이라는 공항의 이색 풍경으로 거듭난다.
‘그레이트 모빌’의 섬세한 유동성은 중앙 지역 천장에 배치된 강희라의 ‘헬로’로 연결된다. 한글 모음과 자음 모양의 오브제 1000개가 다채로운 빛을 발하며 그래픽 이미지를 만드는 또 다른 모빌 작품이다. ‘헬로’란 단어는 공항을 찾은 이방인들만을 위한 인사가 아니다. 작품을 보면 공항에서 이뤄지는 만남과 이별을 다룬 해외 리얼리티 프로그램 ‘헬로 굿바이(Hello Goodbye)’가 떠오른다. 낭만, 호기심, 기쁨, 슬픔이 공존하는 공항을 통해 내밀한 사연들을 보듬은 프로그램처럼, 이 다정한 인사말은 공항을 찾는 모든 이의 삶을 환대한다. 제1여객터미널에 설치된 서도호의 ‘집 속의 집’ 역시 공항만의 특수성에 힘입어 향수와 일상성을 자아낸다. 이 외에도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품을 곳곳에 배치해 누구나 즐기도록 했다. 공항이 휴식과 만남 등 또 다른 일상을 영위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몸으로 익힌 공간의 느낌은 어쩔 수 없이 기억과 추억을 먼저 일깨운다. 여행 출발 전 면세구역에서는 시간의 흐름과 빛의 순환을 담은 지니 서의 ‘윙스 오브 비전(Wings of Vision)’ 덕에 더 설렜다. 귀국할 때 수하물 수취지역에서는 선으로 한국의 건축물을 입체감 있게 직조한 김병주의 ‘앰비규어스 월(Ambiguous Wall)’이 따뜻하게 맞이해줬다.
지난 1월 말 인천공항은 미술품 수장고를 조성하고 세계 유명 미술관의 분관 유치를 추진하는 등 문화예술 공항으로서의 새 포부를 밝혔다. “인천공항, 놀이터가 되다”라는 슬로건이 “인천공항, 전시장이 되다”로 바뀔 날을 기다리며, 미술작품들이 공항의 빈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