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스리면 병이 낫는다’라는 이야기는 실록의 보편적 질병관이다. 조선시대를 지배한 유학적 의료관(치료관)의 핵심은 마음을 닦는 ‘수양론’이었다. 질병의 원인을 육신보다 마음에서 찾았다. 욕망과 기질을 제어해 도덕적 삶을 살면 인간 본연의 성품이 드러나 모든 질병에서 해방된다는 논리. 심지어 운동이나 좋은 음식도 욕망을 채우거나 쾌감을 얻기 위한 것이므로 경계의 대상이 되곤 했다.
조선의 대신들은 물론 유학자들도 임금의 건강을 지켜내기 위한 방편으로 절제와 수양을 강조했다. 명종 3년 시강관 정유길은 임금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남녀상열지사’를 삼갈 것을 주문한다. “마음을 보양함은 욕심을 적게 가지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주상께서는 지금 혈기가 바야흐로 성하시니 항상 인욕을 절제하고 심성을 보양해야 할 것입니다.”
인조 21년 예조판서 정태화는 “심성을 수양하시고 원기를 잘 보호하신다면, 여러 증후들이 자연스레 퇴치될 것”이라고 했고, 유학자 송준길도 현종을 향해 “자주 경연을 열어 학문을 강론하면 덕이 날로 증진되면서 병도 차츰 사라질 것”이라고 진언한다.
하지만 마음이 몸을 지배한다는 유학적 의료관은 주술과 기도를 통해 질병을 치료한다는 무속적, 종교적 의료관과 충돌했다. 태종의 4남 성녕대군이 두창(천연두)으로 사망하자 형조가 직접 나서 왕자의 사인(死因)을 무속과 종교에 뒤집어씌운 기록도 있다.
실제 성녕대군이 두창으로 생사를 헤맬 당시, 불교 총지종 승려와 무속의 판수들이 궁으로 들어와 염불을 하고 점을 쳤으며, 국무인 가이와 무녀 보문은 기양법으로 치료에 나섰다. 심지어 뒷날 세종이 되는 충녕대군 역시 주역 점을 쳐 “(동생 성녕의) 병이 곧 나을 것”이라는 예언까지 내놓았다. 후일 태종은 이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세상을 혹하게 하고 백성을 속이는 것은 매한가지”라며 주술적, 종교적 치료에 대해 철퇴를 내린다.
숙종 10년 이조판서 박세채는 “임금(숙종)이 두창을 앓았을 때 무녀 막례가 술법을 가지고 궁중에 들어와 기양법을 행하였는데, 대비로 하여금 매일 차가운 샘물로 목욕할 것을 청했다”고 무속적 치료 행태를 비판했다. 숙종의 모친인 명성왕후는 무녀 막례의 점괘대로 한겨울 밤중에 삿갓을 쓴 소복 차림을 하고선 차가운 샘물로 목욕을 하다 병을 얻어 유명을 달리했다.
이렇듯 조선시대에는 심성을 길러 병을 회복하는 유교적 의료관을 양심(養心)이라 부르고 절대적 존재에 치료를 빌어 병을 물리치는 무속적 치료관을 안심(安心)이라 했다. 조선의 유림과 임금을 비롯한 왕족은 평상시에는 양심에 기대다가 본인이나 가족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는 급박한 상황에선 안심에 매달리는 표리부동의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유학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치료법은 모두 거부하는 한편, 의술은 등한시하고 마음의 수양만 외치며 이념만을 숭상했다. 조선의 의사는 그들에게 천시의 대상이었다. 위급한 순간, 그들에게 사랑하는 이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부탁할 대상은 죽은 조상이나 초월적 존재가 아니면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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