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포연 휩싸인 세계경제, 韓 불안한 외줄타기 시작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6일 00시 00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미국은 서방 동맹국과 함께 러시아 대형은행의 자금 거래를 차단하고, 첨단제품의 수출을 금지하는 경제제재에 착수했다. 금융기관의 자금줄을 죄는 한편 항공 반도체 통신 관련 품목의 대(對)러시아 수출을 제한함으로써 금융과 산업을 동시에 압박하는 전략이다. 반면 중국은 러시아산 밀 수입을 완전히 개방하는 등 중-러 경제협력 강화에 나섰다. 신냉전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 세계 경제가 서방과 비(非)서방 진영으로 쪼개지는 조짐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

이번 사태는 가뜩이나 불안한 세계 경제에 더 어두운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 1위 천연가스 수출국이자 전 세계 밀 수출량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에너지와 곡물, 원자재 가격이 동시다발적으로 급등하는 ‘슈퍼 스파이크’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 150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현실화하면 세계 각국의 고통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는 최근 3개월 연속 무역적자, 배럴당 국제유가 100달러 돌파, 10년 만에 3%대 물가상승 등 안팎의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터진 우크라이나 사태로 반도체, 자동차 등 주력 제품의 러시아 수출길이 막히고 현지 생산이 전반적으로 위축되는 어려움이 가중됐다. 여기에 공급망 교란으로 에너지 가격과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 국내 물가가 더 오르고 그 여파로 금리 인상 폭이 커지면서 경기가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지금 세계 각국은 시계(視界) 제로인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러시아 경제제재에 동참하는 동시에 곤두박질치는 성장을 떠받쳐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기업은 고물가 고환율 고유가의 복합위기에 직면해 있고, 가계는 빚에 짓눌린 채 주식과 부동산시장의 급격한 변동에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의 펀더멘털을 직시하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위기 대응책이다. 이런 안전망 없이 시작된 한국 경제의 외줄타기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러시아#우크라이나#세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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