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계기로 여야 대선 후보들은 확연히 다른 외교안보관을 드러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어제 TV토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겨냥해 “전쟁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큰소리 뻥뻥 친다고 되느냐. 그걸 ‘안방 장비’라 한다”고 힐난했다. 이에 윤 후보는 “평화는 확실한 억지력을 통해 유지될 수 있다. 상대의 비위를 맞추고 굴종하는 유약한 태도로는 지속가능한 평화를 얻을 수 없다”고 맞섰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존망 위기에 몰린 우크라이나의 현실은 강대국이 지배하는 냉혹한 국제정치에서 약소국이 겪는 비극을 보여준다. 비록 중견국의 위상을 자랑한다지만 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의 처지에서도 머나먼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대선을 코앞에 둔 한국 정치에선 이런 우크라이나의 운명도 여야 정치권이 함께 새겨야 할 교훈이 아닌, 상대를 깎아내리고 비난하는 정쟁의 소재가 되고 있다.
여당은 늘 그랬듯 ‘전쟁이냐, 평화냐’의 구도로 몰아가며 야당을 향해 “안보 불안을 조성한다”고 비판하고, 야당은 이런 여당에 ‘반미·친중·친북’이란 딱지를 붙여 이념 공세를 펴고 있다. 후보들의 유세 언사는 더욱 거칠고 저급하다. 이 후보는 “흉악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대신 보일러를 놔 드리겠다”며 야당의 사드 추가 배치론을 비아냥거렸다. 윤 후보는 “민주당 사람들은 반미·친중·친북에 빠져 김정은 비위만 안 거스르고 마음에만 잘 들면 평화가 유지된다고 생각한다”고 비난했다.
우크라이나가 강대국 대결의 제물이 된 것은 자강(自强)도 하지 못하고 동맹도 얻지 못한 터에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지혜로운 대처를 하지 못한 외교적 무능 탓도 크다. 그런 무능의 중심에는 분열과 갈등의 정치가 있었다. 국가 생존이 달린 문제에도 국론을 모으지 못한 나라의 운명을 보면서 우리 정치권도 정파적 진영논리에 빠져 똑같은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특히 후보들은 누구라도 당선 뒤엔 지금 마구 쏟아낸 대외 메시지가 부메랑이 되어 국가적 행보에 발목을 잡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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