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김기용]美의 내정간섭 비판하던 中 어디 갔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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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우크라 침공 명백한 폭력적 내정간섭
외교원칙 배치되는 러에 한마디도 못해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외교관들은 논리로 무장한 사람들이다. 외교 무대에서 총칼로 싸울 순 없다. 그 대신 논리적인 대화로 상대방의 말문을 막히게 하면 승리다. 반대로 논리가 부족해 말을 못 하면 곧 패배다. 외교관의 패배는 개인의 패배가 아닌 국가의 패배다. 외교관들은 이 큰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말을 멈추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논리에서 밀려 스스로 논리적이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말을 계속한다. ‘동문서답’도 그중 하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에 대해 중국 외교부의 동문서답이 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 기자는 물론 베이징에 있는 각국 특파원들이 참석하는 브리핑을 매일 오후에 연다. 이 브리핑에는 화춘잉(52), 왕원빈(51), 자오리젠(50) 대변인이 순번을 정해 한 명씩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다. 대변인들의 성향은 각각 다르다. 셋 중 가장 논리적인 인물이 왕원빈이다. 목소리 톤도 높낮이 없이 일정하고 감정 변화를 잘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런 왕 대변인마저 최근 동문서답을 쏟아내고 있다. 논리가 막힌 탓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튿날인 25일 브리핑에는 왕 대변인이 참석했다. 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러시아에 대한 표결이 진행되면 중국이 반대표를 던지겠느냐’는 첫 질문에 “중국은 유엔 헌장 취지에 입각해 문제를 다룰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이어 “러시아 제재에 동참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유엔 헌장 취지의 원칙에 입각해 관련 문제를 다루겠다”고 했다. 또 “중국은 러시아의 군사행동이 우크라이나 내정을 간섭한 것이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는 아예 답을 하지 않았다.

전날 화 대변인은 자기 얘기만 했다. 그는 관련 질문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특파원들을 향해 “우크라이나 사태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invasion)’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대규모 군 병력을 파병했을 당시에 서방 언론들은 과연 ‘침공’이라는 단어를 썼느냐고 반문했다.

중국 외교관들의 동문서답 내지 묵묵부답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면서 중국이 논리적으로 난처한 상황에 직면한 것을 보여준다.

중국은 미국과 대립하면서 늘 ‘내정간섭’이란 말을 사용했다. 신장위구르지역 소수민족 인권탄압 문제, 대만 문제, 홍콩 문제 등이 나올 때마다 내정간섭을 앞세워 미국을 비판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 때도 미국이 아프간 내정에 간섭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평화를 사랑하며 강대국이 약소국의 내정에 폭력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영원히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기준으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명백한 내정간섭이다. 중국은 미국을 비판하던 신랄한 시선을 러시아로 돌려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모든 것이 꼬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은 존중돼야 한다”면서도 “러시아 제재에는 반대한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중국은 기로에 서 있다. 러시아를 멈춰 세우고 우크라이나의 평화 회복에 적극 나선다면 주요 리더 국가로 위상을 높일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강조하는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은 한국과 한복 기원을 놓고 다투는 상황이 아니라 바로 이럴 때 발현돼야 한다. 하지만 애매모호한 자세로 일관한다면 ‘중국은 결국 그렇고 그런 나라’라는 비판과 함께 지금보다 더 심한 국제사회의 고립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우크라#미국 내정간섭#중국 외교부#동문서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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