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집결하면서 국제사회에 전쟁 우려가 고조됐지만 전면전으로 치달을 것이라 생각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예상과 달리 러시아가 왜 전면전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이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지 분석이 필요한 이유다.
소련 해체 후 미국은 러시아가 봤을 때 군사적으로 공격적이며 악의적으로 간주될 수 있는 조치를 여럿 취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확장, 유럽에 미사일방어(MD)체제 설치, 이라크 침공, ‘색깔혁명’ 지원 및 미-러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조약 폐지 등이다. 특히 나토 동진(東進)과 러시아 안보 완충지대인 우크라이나, 조지아의 친(親)서방화는 러시아에 중요한 안보 위협으로 간주됐으며 안전한 경계를 재설정하려는 시도가 전쟁으로까지 번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한 국가가 방어적이라 주장하는 행동이 상대국에는 안보 위협으로 인식되는 안보 딜레마 상황이다. 특히 본질적인 정체성 대립으로 타협이 불가능해져 충돌로 이어지는 소용돌이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내부 민주화 요구가 거세진 가운데 2024년 정권의 사활이 걸린 대선을 앞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경쟁자 중국에는 물론이고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하는 나토 동맹 세력에, 반(反)러시아 정서를 가진 유권자에게 ‘강한 미국’ 이미지를 훼손할 수 없는 조 바이든 대통령도 서로에 대한 신뢰는 고사하고 한 치 양보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 전면전 예측한 전문가 많지 않아
바이든 대통령이 ‘2월 16일 러시아가 침공할 것’이라고 전쟁 날짜까지 특정했지만 바로 전면전을 떠올린 전문가는 적었다. 푸틴 대통령이 미국과 나토에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옛 소련 구성국의 추가 나토 가입 중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인접한 나토 회원국 내 단·중거리미사일 배치 금지, 러시아 인접 나토 회원국 내 과도한 군사력 배치 금지 같은 구체적 ‘레드 라인’을 제시했고, 이를 토대로 미-러 정상회담뿐 아니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연쇄 정상회담을 해 협상 여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또 경제가 어려운 러시아로서는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폐기, 국제 은행 간 통신협회(SWIFT) 결제망 퇴출 등 강력한 서방 경제제재를 견디기 쉽지 않을 것이며, 서방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후방 병력 투입 등으로 전면전 부담이 클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충돌이 일어난다면 전면전보다는 우크라이나 동부 분쟁지인 돈바스 지역에서의 내란 선동이나 우크라이나 주요 시설에 대한 사이버공격이 추진될 확률이 높을 것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21일 푸틴 대통령이 돈바스 친러 반군의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 독립을 승인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하면서 분위기가 일순 전환됐다. 이 대통령령에 돈바스 평화 유지를 위한 러시아의 군사력 사용 가능성이 포함됐기 때문에 서구는 이를 사실상 침공으로 규정하게 됐다.
24일(현지 시간) 오전 5시 50분 푸틴 대통령이 돈바스 특별군사작전을 발표하면서 군사력 투입이 현실화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러시아군 진입은 돈바스와 크림반도로의 육상 연결 통로 확보가 가능한 흑해 연안지역(소위 ‘노보로시야’ 지역)까지 이뤄질 것으로 봤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뿐만 아니라 벨라루스와 흑해에서부터 전면 공격에 나선 것이다.
○ 푸틴은 왜 전면전을 선택했을까
푸틴 대통령은 왜 이리 무모한(?) 결정을 했을까. 애초 전면전을 계획했고 협상이나 돈바스에 국한된 군사작전 공표는 이를 엄폐하려는 기만전술이었는지, 아니면 미국이 전례 없이 전쟁 관련 정보를 계속 공개해 러시아를 압박하며 협상에서 타협 자세를 보이지 않아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몇 가지 추론은 가능하다.
첫째, 서방과 협상해 러시아가 원하는 ‘민스크2 협정’ 이행을 보장받거나 돈바스 점령을 통해 동부 우크라이나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전략 목표인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저지는 달성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 정당성을 얻을 수 있고 서구도 대(對)러시아 강력 대응 차원에서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을 서두를 것이다.
둘째, 러시아 전략 목표가 단순히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저지가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인질로 러시아의 지정학적 영향력을 ‘주요 3개국(G3)’으로 격상시키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러시아까지 맞서는 것에 미국이 부담스러워 할 이 시점을 기회로 생각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완충지대화보다는 과거 바르샤바조약국이면서 나토에 가입한 폴란드나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 대치선을 긋는 것이 영향력 면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셋째, 러시아는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 위상을 약화시킨 후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집중하려 한다고 봤을 수 있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 손상된 나토 동맹 세력을 재결집하고 러시아 안보 위협을 과장해 나토 군사력을 강화하면서, 미국에 부담인 노르트스트림2 같은 유럽과 러시아의 경제협력 강화를 막으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가 인도태평양전략의 추동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전쟁을 결정했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내 민주화 요구에 직면해 위상이 흔들리는 푸틴 대통령이 미국을 정권 위협요소로 인식하고 ‘서구’라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 국민 애국심에 호소해 2024년 대선 승리 기반을 확고히 하려고 했을 수 있다.
○ 친러 우크라 정부 수립 가능할까
우크라이나는 인구가 4300만 명이고 30만 명이 넘는 병력이 있기 때문에 러시아가 단기간에 전쟁을 끝낼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상황 전개에 따라 향후 예측은 가변적이다.
러시아의 바람대로 빠른 시간에 수도 키예프를 점령한다면 러시아는 철군을 대가로 돈바스의 러시아 합병과 우크라이나 중립국화(핀란드화)를 놓고 미국에 협상을 제안할 가능성이 크다. 대러 제재를 푸는 것도 포함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기는 불가능하며 제재 수준을 더욱 높일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이나 민병대의 저항이 지속된다면 미국은 군사 개입을 고려할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장기 점령하면서 친러 정부 수립에 노력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쉽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군이 장기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역을 통제하기 어렵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된다면 러시아도 고민할 것이며 서구와의 2차 협상 가능성도 있다.
친러 정부 수립이 어려워진다면 동부 우크라이나를 경계로 후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주요 기반시설 및 군 시설을 파괴하고 우크라이나 반러 인사 처형 등이 이뤄질 수 있다. 전쟁 장기화 가능성도 아직은 있다. 이 경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정부와 러시아의 양자 협상 또는 독일 프랑스 등이 참여하는 다자 협상이 재개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스토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 전개되든 글로벌 세력 재편은 가속화할 것이며 유럽에서의 신(新)냉전 구도는 강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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