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군 복무 중인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선 ‘바디프로필’ 촬영이 유행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장병들은 수개월간 고강도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만든 멋진 근육질 몸을 뽐내고 있다. ‘군인바디프로필’ 등 해시태그(#)까지 단다.
이를 두고 논란도 한창이다. 풀어 헤친 군복 때문이다.
사석에서 만난 군인들의 반응은 어떨까. 찬반이 엇갈렸다. 대체로 “품위를 훼손한다”거나 “군복으로 장난치는 행위”라는 부정적 의견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MZ세대들을 중심으로 “군에 대한 자부심과 소속감을 드러낸 것”이라든지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는 반론 역시 적지 않았다.
일단 규정을 찾아보자. 부대관리훈령 27조는 ‘복장과 마음가짐을 단정히 하여 군인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군인복제령 16조엔 군복의 종류별 착용 상황을 명시하고 있다. 여기엔 ‘바디프로필’ 촬영 등 사적으로 군복을 착용하는 상황은 포함돼 있지 않다. 엄밀히 보면 규정 위반인 셈이다. 전례도 있다. 2019년 기부를 위해 장병 13명이 ‘몸짱 달력’을 제작했을 당시 군은 판매를 일시 중단했다. 복장 불량이 군인의 품위를 훼손한다는 이유에서다. 판매는 일부 사진이 수정되고 나서야 재개됐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진 건지 지금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달 관련 질의에 “군인 기본자세와 관련된 규정들에 대한 전반적인 보완을 추진하고 있고, 규정이 명확히 준수될 수 있도록 규정 개정을 상반기 중 완료하겠다”고 했다. SNS에 군복을 걸치고 자신의 몸을 노출시키는 행위를 기존 잣대로만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본 것이다. 무조건 억누르는 강력 대응이 오히려 MZ세대의 반발을 살 수 있다는 측면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군 관계자는 “장병 SNS 사용과 관련한 규정 등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이를 먼저 논의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사실 이번 논란은 군 조직이 여전히 MZ세대의 부상(浮上)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공정과 합리성을 중시하고 자신의 생각을 SNS에 여과 없이 드러내는 MZ세대가 군 조직문화나 규정과 충돌해 왔지만, 군이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장병들은 풀어 헤친 군복을 기강 해이나 품위 훼손과 연관짓는 기존 사고방식에 반기를 든다. 확고한 판단 기준이 없어 생긴 잡음은 군에 변화의 필요성을 전방위적으로 묻고 있다.
많은 이들은 MZ세대 ‘러시’의 서막(序幕)이 2020년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허용한 시점부터였다고 본다. 간부, 병사를 막론하고 부대 부조리나 자신의 요구를 익명으로 SNS에 제보하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군은 홍역을 치렀다. 이들 폭로를 대처하는 게 부대관리 우선순위가 되면서 일선 부대에선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민원”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오죽하면 군은 MZ세대 관리에 고충이 많은 대대장들을 잘 보살피라는 공문까지 내렸다.
변화가 옳고 그른지를 떠나 MZ세대는 이미 부실급식이나 과잉방역 등 SNS 폭로로 자신들이 군 개혁을 선도하고 있다는 ‘자부심’까지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군은 이러한 MZ세대의 요구를 받아들일지 여부조차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지난해 간부와 병사의 차별적 두발 규정을 철폐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도 군은 1년 가까이 세부 시행령을 개정할지를 두고 머뭇거리고 있다. 이미 각 군으로부터 개선안도 받아 취합했지만 예비역 등 여론 반발을 우려한 탓이다. 이러다 보니 “민감한 문제인 만큼 결정을 다음 정부로 넘기려는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전투준비태세 등 국방력 유지를 위해 군이 구성원의 자유를 일부 제한할 필요가 있는 것은 맞다. “병영문화 개혁 요구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하는 이는 여전히 많다. 그럼에도 변화에 보수적인 이들조차 MZ세대 요구를 군이 어느 선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 큰 틀의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세워야 한다는 점엔 공감하고 있다. 변화한 시대에 맞춰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바디프로필’ 논란 이후 일부 부대에선 신원이 확인된 장병들에게 조용히 “사진을 삭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기준이 부재한 상황에서 현장의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런 방식의 대응은 제2, 제3의 ‘바디프로필’ 논란만 불러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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