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월부터 맞는 백신 주사가 있다. 바로 독감 백신이다. 독감 바이러스는 해마다 변이를 거듭하기 때문에 매년 새로 만든 독감 백신을 맞을 수밖에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그해에 어떤 종류의 독감 바이러스가 유행할지 미리 예측해 발표한다.
얼마 전에도 WHO는 지난해 호주 뉴질랜드 등 남반구에서 유행한 독감 바이러스를 분석해 올해 겨울 북반구에 유행할 4가지 유형(A형 두 가지, B형 두 가지)의 독감 바이러스를 예측 발표했다.
국내에선 SK바이오사이언스, 녹십자, 일양약품, 동아ST, 보령바이오파마, 보령제약, LG화학, 한국백신 등 국내 회사와 사노피파스퇴르,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등 외국 제약사가 백신을 생산한다. WHO가 발표한 바이러스를 토대로 해당 균주를 확보해 배양한다. 이 기간이 수개월 걸리기 때문에 지금 생산해야 9월부터 독감 백신을 맞을 수 있다.
백신을 맞으면 우리 몸에선 중성구, 대식세포 등 다양한 백혈구들이 나와 몸에 침투한 백신(항원)과 열심히 싸운다. 이를 선천면역이라고 한다. 선천면역은 백혈구의 일종인 림프구가 항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어준다. 항체 생성에는 2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이후엔 독감 바이러스가 언제 침투해도 즉각 림프구가 항체를 충분히 만들어 독감을 이겨낼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도 항체 생성에 2주의 시간이 걸린다. 다만 독감 백신은 매년 다른 종류의 백신인 반면 코로나19 백신은 2년 전 코로나19 바이러스 균주로 만들어진 백신이라는 것이 차이점이다.
따라서 코로나19 백신은 초기 코로나19 바이러스에는 매우 효과적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베타 변이, 델타 변이, 오미크론 변이 등 다양한 모양의 스파이크 단백질 변이를 가진 바이러스가 출현하면서 백신 효과가 점점 떨어진다.
쉽게 말해 2020년 초 중국 우한(武漢)에서 처음 발견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의 모양을 세모라고 가정했을 때 베타 변이는 사다리꼴, 델타 변이는 네모, 오미크론 변이는 동그라미 등 다양한 모양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현재 코로나19 백신으로 만들어진 항체는 세모 모양 바이러스에 가장 잘 붙고, 사다리꼴이나 네모, 동그라미 모양에는 약하게 붙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초기 백신과 비슷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추가 접종(부스터샷) 등을 통해 항체 생성량을 높일 수밖에 없다. 즉, 세모일 때는 한 개의 항체가 붙어서 방어를 했다면 사다리꼴에는 2개의 항체가 붙고, 네모엔 3개의 항체가 붙어서 같은 효과를 낸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매번 부스터샷을 통해 항체량을 높이면 코로나19 방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최근 요양병원을 중심으로 입원 환자와 종사자들에게 4차 접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면역학자들은 3차 접종 이후 ‘짧은 기간’에 ‘같은 균주’로 만들어진 백신의 4차 이상 접종 효과에 대해선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세계 최고 면역학자 중 한 명인 서울대 의대 박성회 명예교수는 수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같은 균주로 만들어진 백신으로 4차 이상의 부스터샷을 접종할 경우 우리 몸의 림프구가 항체를 많이 만들어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림프구가 탈진하거나 무기력에 빠져 항체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박 교수는 “면역세포도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제대로 일을 한다”면서 “불과 3, 4개월 만에 부스터샷을 접종하는 것은 이런 휴식을 충분히 주지 못하기 때문에 탈진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게 면역학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3차 접종을 마친 박 명예교수는 4차 이상부터는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젊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젊은 사람의 면역세포도 같은 백신을 계속 접종받으면 나이든 사람의 면역세포처럼 일을 하지 못하는 무기력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독감 백신은 1년에 한 번 접종해서 우리 몸의 면역세포들이 푹 쉴 수 있는 기간을 충분히 주고 있다. 더구나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코로나19 백신은 새로운 변이에 대응해서 만든 백신이 아니다. 이 때문에 4차 이상의 부스터샷 접종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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