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필 왕희지[이준식의 한시 한 수]〈150〉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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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우군은 원래 맑고 진솔한 사람, 속세를 벗어난 듯 소탈하고 대범했지.

산음 땅에서 만난 어느 도사가, 거위 좋아하는 이분을 몹시도 반겨주었지.

흰 비단에 일필휘지 ‘도덕경’을 써내려가니, 정교하고 오묘한 그 필체는 입신의 경지.

글씨 써주고 얻은 거위를 조롱에 담아 떠날 때, 주인과는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했지.

(右軍本淸眞, 瀟灑出風塵. 山陰遇羽客, 愛此好鵝賓. 掃素寫道經, 筆精妙入神. 書罷籠鵝去, 何曾別主人.)

―‘왕우군(王右軍)’·이백(李白·701∼762)



왕우군은 곧 왕희지(王羲之), ‘춘향전’에서 이도령이 과거시험 치를 때 ‘왕희지 필법으로 조맹부체를 받아 일필휘지’했다고 묘사한 그 명필이다. 생전의 직함 우군장군(右軍將軍)에서 따온 호칭이다. 그는 거위를 무척 좋아했는데 희고 깨끗한 깃털을 고결한 선비의 표상으로 여겼다고도 하고, 또 거위의 몸놀림에서 서예의 운필(運筆) 기교를 익힐 수 있었다고도 하는데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다.

왕희지는 한 도사가 거위를 기른다는 소릴 듣고 그걸 사려고 찾아갔다. 도사가 ‘도덕경’을 써주면 거위를 거저 주겠노라고 하자 그는 흔쾌히 응했다. 거위를 얻은 그의 달뜬 마음을 시인은 ‘주인과는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자리를 떴으리라 상상한다.

왕희지의 이 거위 사랑은 정사인 ‘진서(晉書)’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백의 시가 나오면서 더 널리 알려졌다. 이 글씨를 두고 시인은 ‘정교하고 오묘한 그 필체는 입신의 경지’라 극찬할 만큼 서성(書聖) 왕희지에 매료된 듯하다.

왕희지가 머물던 곳곳에 이른바 ‘묵지’(墨池·먹물 빛 연못)가 전설처럼 남아 있다. 서예를 연마하면서 붓과 벼루를 씻느라 못물이 시커멓게 변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수백 년 후 당 류언사(劉言史)는 ‘지금도 못물엔 남은 먹물이 배어 있어, 여느 샘물과는 빛깔이 다르다네’라 과장하기도 했다.

#명필#왕희지#왕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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