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식과 와인처럼 최고와 최고가 만나 극강의 최고가 되는 것이 있다. 내겐 자연과 건축이 그렇다. 자연의 생태와 아름다움을 깨지 않으면서 세심하게 들어선 건물은 자연의 조화로움을 다시 보게 하고 건축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며칠 전 인왕산 등산로에 새로 생긴 인왕산 숲속 쉼터에 다녀왔다. 1968년 북한이 청와대 기습을 시도한 후(일명 김신조 사건) 인왕산과 북악산에는 30여 개의 군 초소 및 경계시설이 들어섰고 시민 출입도 금지됐다. 이번에 숲속 쉼터로 변신한 이곳은 경찰 병력이 내무반으로 사용하던 ‘인왕3분초’라는 곳이다. 철거를 고민하면서 서울시와 종로구 측은 이곳을 숲속 쉼터로 바꾸기로 한다. 목조 건축 전문가인 조남호 건축가와 ‘에스엔건축가사무소’를 이끄는 김은진, 김상언 건축가가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이들은 기존 초소를 숲속의 작고 근사한 전망대이자 쉼터로 바꿨다.
주말 오후 이곳을 오르는 길에 본 풍경이 재미있다. 옛 초소를 카페이자 쉼터로 바꾼 초소책방은 주차 요원이 들고 나는 차량을 안내하느라 바빴다. 익숙한 풍경이라 이제 ‘굳이 이런 곳까지 차를 가져온담?’ 하는 혼잣말도 하지 않는다. 이곳을 지나 숲속 쉼터로 올라갔는데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10분쯤 올라야 하는 길고 높은 계단 때문인 듯했다.
땀이 맺혀 중간쯤 외투를 벗고 가쁜 숨을 내쉬며 올려다본 숲속 쉼터는 하, 훌륭했다. 철근 콘크리트 필로티 위에 반듯하게 올린 목구조. 계단과 지붕에는 알루미늄 철판을 올렸다. 내부도 수려했다. 스프러스 집성목으로 만든 나무 기둥과 통창 너머로 인왕산의 산세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와이즈건축’의 장영철 건축가가 빼빼한 막대 나무로 만든 의자도 보기 좋았다. 자연 속 아름다운 건축이야말로 최고의 공공디자인이 아닐까 싶다.
마침 자리가 나 전망 좋은 의자에 앉아 4시간가량 머물렀다. 부잣집 주인이 된 것 같았다. 한편에 마련된 독서대에서 ‘궁궐의 우리 나무’란 책을 가져와 마음 가는 대로 읽었다. 한 번씩 고개를 들어 산세를 감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잘한 욕망, 지질한 불만이 중간중간 떠올랐지만 ‘여기까지 와서 이럴 일은 아니야’ 하고 뇌가 시켰는지 이내 잠잠해졌다. 그런 순간이 길어지면 성찰과 사색이 될 텐데 잠깐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신의 한 수는 커피를 팔지 않는 것. 커피가 없으니 모두가 조용했고 조용해진 만큼 차분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내려오는 길, 눈도 마음도 정화를 한 듯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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