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써본 유서[이재국의 우당탕탕]〈64〉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4일 03시 00분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월요일 밤, 자려고 누웠는데 목이 칼칼했다. 일어나서 미지근한 물을 한잔 마시고 다시 잠자리에 누웠는데 여전히 목이 칼칼하고 약간의 미열이 있는 것 같았다. 목이 답답해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았고, 몸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코로나19 자가진단 키트로 검사를 했는데 음성이 나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회사에 연락해서 재택근무를 신청했다. 점심이 지나도 열이 떨어지지 않아 보건소에 가서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으려고 했는데 자가진단 키트에서 양성이 나와야 PCR 검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자가진단 키트로 검사를 했는데 또다시 음성이 나왔다.

그날 밤, 열이 나고 침을 삼키기 힘들 정도로 목이 아팠다. 밤새 끙끙 앓고 일어나자마자 자가진단 키트로 검사했더니 두 줄이 나왔다. 그걸 들고 보건소에 가서 PCR 검사를 한 결과 목요일, 코로나 확진 문자를 받았다. 나는 검사한 날로부터 7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2차 접종을 한 지 90일이 넘은 아내 역시 7일간 함께 자가격리를 해야 했고, 90일이 안 된 딸은 수동감시 대상자로 자가격리를 하지 않아도 됐다.

그렇게 시작된 7일간의 자가격리. 처음 3일간은 열도 나고, 머리도 멍한 것 같고, 침을 삼키기 힘들 정도로 목이 따끔거렸다. 그런데 3일이 지나고 나니 약간의 근육통 외엔 열도 내렸고 목 아픈 것도 사라졌다. 다행히 서재에 별도의 화장실이 있어서 시설에 가지 않고 집에서 격리생활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밀린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지루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하루에 두 번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이건 뭐 유배를 온 심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군대 제대 이후에 홀로 한 공간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버틴 적이 처음이었다. 휴대전화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없었던 그 옛날 유배를 갔던 이들은 지루함을 어떻게 해소했을까? 아니지, 그들은 집 밖에도 나가고 동네 마실도 다닐 수 있었겠지. 이렇게 방 안에서 철저히 고립되는 건 그들도 경험하지 못했을 수 있다. 코로나19라는 역병이 정말 별걸 다 경험하게 하는구나.

어디서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친한 PD가 전화를 걸어왔다. “이왕 자가격리 하는 거, 유서를 한번 써보세요!” “아니, 죽을병도 아닌데 유서를 왜 써?” “재산을 누구한테 남긴다, 그런 유서 말고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꼭 남기고 싶은 말, 인생을 돌아보며 꼭 남기고 싶은 말을 남겨 보시라고요.” 처음에는 농담처럼 흘렸는데 ‘유서’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래, 지금 아니면 언제 써보겠어.’ 철저한 고립과 고독 그리고 외로움. 괜히 센티해진 새벽에 노트를 펼쳤다.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 중요한 물건, 중요한 일. 길게 나열한 뒤 하나씩 지워 나갔더니 결국 가족과 친구만 남았다. 큰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니고 유서가 길면 뭐하겠나 싶어 담백하게 정리했다. “내 가족을 사랑하고, 과거에 만난 친구나 미래에 만날 친구가 아닌, 오늘 만나고 있는 내 친구들에게 감사하자. 부족하고 실수투성이였지만 사랑했다, 내 인생.”

#코로나 확진#자가격리#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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