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지만 러시아 내에선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지율이 70%로 오히려 6%포인트 올랐다. 침몰 직전의 러시아를 세계 초강대국으로 일으켜 세운 강한 리더로서 굳건한 지지를 받아온 데다 정부의 보도 통제로 명분 없는 참혹한 전쟁의 실상을 러시아인들이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의 보도지침에 따르면 이번 전쟁은 우크라이나를 나치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특수 작전’이고, 민간인의 희생은 우크라이나가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이용하는 탓이다. 러시아 정부는 ‘특수 작전’ 대신 ‘전쟁’이라고 보도한 민영 방송의 송출을 금지하고, 서구 언론과 소셜미디어의 접속도 차단했다. 보도지침을 따르지 않는 기자는 ‘가짜뉴스’를 보도한 것으로 간주해 최대 15년의 징역형에 처하는 형법 규정도 5일 발효됐다. 지난 29년간 기자 6명이 살해당하면서도 권력을 비판해 온 ‘노바야 가제타’마저 정간을 피하기 위해 전쟁 보도를 중단하기로 했다. 지난해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편집장으로 있는 신문이다.
▷눈과 귀가 가려진 채 국영방송의 선전보도에 노출된 러시아인들이 전황을 제대로 알 리 없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러시아에 사는 가족들과 전화 통화를 하다가 놀란다. 수화기 너머 도심에 포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가족들은 “너를 해방시켜 줄 것” “시민들은 건드리지도 않을 테니 걱정 말라”고 한다. 러시아 내에서 반전 시위로 1만3000명 넘게 체포된 사실도 모른다. 포로로 잡힌 러시아 병사들마저 “해방군으로 환영받을 줄 알았다” “민간인을 공격할 줄은 몰랐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러시아 정부에 차단당한 서구 언론은 “정확하고 독립된 정보에 접근할 권리는 러시아인들도 누려야 할 인권”이라며 특수한 앱과 가상사설망(VPN) 등으로 러시아 정부의 검열을 피해 가고 있다. 2010년대 ‘아랍의 봄’ 당시에도 유용하게 활용됐던 우회로들이다. 영국 BBC는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기 선전전에서 활약했던 단파 라디오를 통해 러시아 일부 지역에 하루 4시간씩 전황을 알리고 있다.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인 푸틴은 영어와 독일어 신문까지 탐독하는 ‘뉴스광’으로 누구보다 정보의 중요성을 잘 안다. 취임 후 국영 언론사를 늘리고 민영 언론사에도 완력으로 ‘애국주의적 가치관’을 강요해 온 이유다. 하지만 국영방송의 시청률은 떨어지고 있고, 검열의 방화벽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진상을 완벽히 막아주기도 어렵다. 진실로는 자국민조차 설득할 자신이 없는 정부가 전쟁에서 승리를 기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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