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세탁은 대중에게 친근한 스포츠행사를 통해 좋지 못했던 이미지를 호감 있게 바꾸려는 시도를 뜻한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통치기간 동안 대규모 스포츠행사를 개최했다.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과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이 대표적이다. 러시아는 소치 겨울올림픽에 약 57조 원, 러시아 월드컵에 18조 원을 쏟아 부었다. 소치 겨울올림픽은 그때까지 개최된 역대 모든 스포츠대회 중 최대 경비를 들인 대회로 알려졌고, 러시아 월드컵은 동유럽에서 열린 최초의 월드컵이었다.
국가적인 대규모 스포츠행사는 국내적으론 국민의 통합과 단결을, 대외적으로는 자국의 번영과 국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구소련 붕괴 이후 약화된 초강대국의 지위를 되찾고 싶어 하던 러시아도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며 올림픽과 월드컵을 열었다. 스포츠를 통해 강하고 화려한 러시아의 부활을 알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지나쳤기에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소치 겨울올림픽은 올림픽을 위한 대규모 시설 투자가 부작용을 낳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많은 시설은 재활용되지 못하고 방치됐다.
시설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러시아의 도핑 문제였다. 러시아가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선수들에게 대규모 도핑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뿐만 아니라 러시아가 각종 국제대회에서도 수많은 도핑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러시아는 2018 평창 겨울올림픽, 2020 도쿄 올림픽,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에서 잇달아 국가 이름을 쓰지 못하는 징계를 받았다.
러시아 스포츠의 불명예는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가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퇴출당하면서 그 정점에 이르렀다. 국제축구연맹(FIFA) 외에도 역도, 아이스하키 등 여러 스포츠단체가 러시아의 국제대회 참가를 불허했다.
스포츠단체들이 러시아를 퇴출시킨 것은 전쟁과 폭력이 평화와 화합을 추구하는 스포츠정신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스포츠대회에서 러시아를 배제시키는 것은 직접적인 물리력을 행사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의 불명예를 세계에 드러나게 함으로써 일종의 명예형을 내리는 것과 같다. 이로써 러시아가 스포츠를 통해 대내외적으로 이미지를 개선하려 했던 시도(스포츠세탁)는 철저히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띈 것은 러시아 스포츠의 극단적인 도구화다. 인위적인 약물을 투여해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도핑은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선수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도핑은 부도덕할 뿐 아니라 중대한 반인권 행위다. 러시아가 국가 차원에서 선수들에게 도핑을 실시했다는 것은 그만큼 러시아가 선수들을 존중하지 않고 성적만을 위한 도구로 활용했음을 보여준다.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도구화된 개인의 꿈과 감정은 엄격히 통제되고 박제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선수들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이 러시아 스포츠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는 이유로 활용돼서는 안 된다.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러시아의 스포츠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계속 고통받을 미래 선수들에 대한 염려 및 개혁 의지로 바뀌어야 한다. 그동안 러시아 국가명은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러시아 선수들이 개인 자격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은 허용됐다. 그러나 그 빈틈을 노려 러시아는 계속 참가 선수들에게 도핑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번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참가했던 러시아 피겨 스타 카밀라 발리예바의 도핑 파문도 한 예다.
러시아 스포츠단체들은 자신들의 퇴출이 부당하다고 여긴다. 그 뒤에는 정치적인 배경이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보면 오히려 러시아가 오랫동안 스포츠를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고, 그 부작용이 국제스포츠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 스포츠에 대한 제재는 개인들에 대한 제재에 앞서 러시아라는 국가의 행위에 따른 제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피해를 실제적으로 겪는 것은 개개의 선수들일 수밖에 없다.
스포츠를 국가 선전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러시아의 근본 시각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러한 행태의 최대 희생자는 결국 자국 선수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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