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크라이나의 영화인들이 카메라 대신 무기를 들어 러시아 침공에 맞서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선 이 영화가 떠올랐다. 제작 당시 소련 감독이었던 지가 베르토프(1896∼1954)의 다큐멘터리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9년)다. 오데사, 키이우, 하르키우, 그리고 모스크바의 다채로운 일상 모습들을 3년간 촬영하고 하나의 교향곡처럼 편집한 무성 영화다.
배우나 시나리오 없이 편집과 촬영의 힘으로만 진행되는 이 작품은 지금 봐도 아방가르드하고 실험적이다. 다중 노출, 슬로 모션, 이동 촬영, 스톱 모션, 스플릿 스크린, 점프 컷 등 당시로서는 새로운 영화 언어의 기법들을 탐구하고 활용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처음 나왔을 당시 혹평을 불러 모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2012년 영국영화협회(BFI)에서 발간하는 ‘사이트 앤드 사운드’에서 조사한 결과 평론가들이 뽑은 ‘세계 역대 최고 영화’ 8위에 뽑혔고, 2014년 평론가와 영화인들이 뽑은 ‘역대 최고 다큐멘터리’ 1위에 올랐다. 참고로 속도감 있고 이따금 유머가 느껴지는 편집은 베르토프의 아내인 옐리자베타 스빌로바가 맡았다.
영화는 연주를 기다리는 오케스트라의 모습으로 시작해 잠들어 있는 도시의 노숙인들과 문 열기 전의 가게 등을 비춘다. 이어 하루 동안 카메라를 들고 이런 모습들을 촬영하는 사나이(베르토프의 형제인 미하일 카우프만)가 기찻길에 누워서 달려오는 기차를 찍거나 마차를 탄 사람들을 촬영하는 장면 등이 나온다. 공장에서 일하고, 해변에서 놀고, 행정 사무실에서 결혼 신고와 이혼 신고를 하고, 필름을 편집하고, 재봉틀을 돌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등장한다. 머리를 다친 남자가 적십자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장면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소련이 이데올로기로 뭉쳐 연방이라는 이름 아래 제국을 만들어 유지하려던 실험은 명백히 실패했다. 어떤 제국이든 그 아래에 속한 사람들, 특히 변방 국가의 시민들의 기본권과 안전이 무시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을 직접 겪었던 이들도 세계 곳곳에 살고 있다.
식민지 아픔을 겪었던 아시아의 역사를 생각하면 제국의 주체였던 국가가 자국 안보를 걱정한답시고 옆 나라를 침략하는 모습은 남의 일로만 치부하기 힘들다. 우크라이나 영화인들이 자국 땅의 자유와 독립을 보호하기 위해 카메라를 내려놓고 무기를 드는 모습에 더욱 공감이 가는 이유다. 그들이 다시 카메라를 들 수 있는 날이, 평화와 상호존중의 날이 속히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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