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전 끝에 대선 승리를 거머쥐었는데 파티를 벌써 끝내라니. 아직 수저도 뜨지 않은 잔칫상과 선물 꾸러미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텐데 말이다. 이 때문에 ‘선거가 끝났으니 민생에 집중하라’ 정도의 레토릭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를 오래 지켜본 사람들이 이맘때 하는 말이 있다. 당선되는 날이 하이라이트이자 정점이고, 그날 후로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고난이 도사리고 있는 내리막길이라고. 실제로 역대 대통령 당선인과 그 주변 세력들은 선거 후 실존적 고민을 주변에 토로하곤 했다. 이제 내 세상인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주변 사방 천지에 널려 있었던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2008년 취임 후 글로벌 금융위기를 효과적으로 극복했다는 데 큰 이견은 없다. 그런 이 전 대통령은 당선 후 참모들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놨다고 한다. “내가 경제 대통령을 내걸고 당선되어서 사람들은 샴페인 터뜨릴 일만 있을 줄 알았을 텐데 막상 되고 보니 금융위기 때문에 나라가 거덜 나게 생겼더라. 그런 상황을 인수받았다.” 지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유가가 치솟고 서방과 경제 제재를 주고받는 극도로 불안정한 경제 환경에서 새 당선인의 사정이 별반 다를 건 없을 것이다.
청와대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최대 7000여 자리에 대한 인사권은 가장 큰 전리품, 대선 파티의 메인 메뉴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막 휘두르면 어느 순간 스스로를 베는 양날의 칼이자,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고 다루면 알이 터져 전체로 독이 번지는 복어 같은 것이다. 승리에 취해 마구 주무르면 정권 전체를 망쳐버리는 치명적인 유혹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극적 파국은 최순실 때문이었지만 전조는 인수위 시절 잇따른 인사 헛발질이었다. 보안을 이유로 자기네들끼리 짬짜미한 황당한 인사 내용을 봉투에 밀봉했다가 공개하곤 했던 박 전 대통령은 결국 첫 국무총리 인사부터 어그러졌다. 선거 기간 역할에 걸맞은 자리를 달라며 들끓을 ‘파리 떼’들은 파티장이 아니라 정글에 막 들어섰음을 알려줄 것이다. 이명박 정부 탄생의 일등 공신이지만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뒤 정치의 덧없음을 몸소 보여줬던 고 정두언 전 의원은 2008년 2월 25일 새 정부가 출범하는 날 주변에 이런 이메일을 보냈다. “대선 뒤처리 중 제일 크고 힘든 일이 고생한 사람들에 대한 (인사 등) 처우 문제다. 한마디로 말하면 고통 그 자체다. 오죽하면 낙선한 측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까. (중략)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정부 인선은 참으로 아슬아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은 권력이 오만하다 느껴지면 바로 등을 돌려 버린다.”
오늘 밤이나 내일 새벽 탄생할 대통령 당선인은 누가 되더라도 며칠간은 몸을 낮추며 정치개혁이나 통합정부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면서 치열한 선거전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라도 승리의 파티를 즐길 준비를 은밀히 할지 모르겠다. 본인이 아니면 주변 측근들이 부추길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외 여건을 봤을 때 한 가지 분명한 건, 당선 직후부터 절제하지 않고 승리에 도취하면 임기 5년이 힘들어질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이다. 네거티브만 남은 최악의 대선을 거친 만큼 이제라도 진짜 일과 헌신의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 성공한 대통령을 바란다면 승리의 의식은 오늘 밤으로 짧고 굵게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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