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마주한 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은 “명사로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무슨 뜻이냐 했더니 생일 파티를 예로 들었다. 파티 말미에 케이크의 촛불을 불 때 ‘끝’이 아니라 ‘꺼’를 생각하라고. 그러면 다음 생일에 다시 ‘켜’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명사로 생각하면 거기서 멈추지만, 동사로 생각하면 더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좀 더 쉬운 예시가 있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 온라인 강의에서 “○○이가 사람을 죽였대”와 “○○이가 살인자래”라는 말을 비교한다.
전자를 들은 사람은 “왜 죽였대?” “무슨 일이 있었던 거래?”라고 이어가는 반면에 후자를 들은 사람은 “이런 나쁜 놈”으로 끝난다. 살인자에 대해 가진 기존 관념을 그냥 붙여 넣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명사가 인간으로 하여금 생각을 안 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인간이 생각의 양을 줄이려고 만든 독특한 품사라는 설명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세상 허무한 구호가 ‘좋은 나라 만들자’이다. 좋은 나라란 대체 어떤 나라인가. 실체도, 비전도, 방법도 없다. 좋은 말인 건 알겠는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이번 대선이 이렇게 치러졌다. 양강 후보 모두 형용사와 명사로 가득한 공약을 내놓았다. 건강, 교육, 일자리, 환경 등 생활에 밀접한 분야를 다루는 부서장인 내가 아무리 뜯어봐도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지려나 가늠할 수 없었다.
가령 코로나19 관련 공약은 이런 식이다. 코로나 대응체계를 전면 개편한다는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은 ‘선진적 대응을 위한 매뉴얼 개편’과 ‘과학에 기반한 코로나 극복’이다. 과연 선진적 대응이란 뭘까? 유럽처럼 하겠다는 건지, 22세기 스타일을 만들어보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과학에 기반하려면 이제 보건복지부 말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맡아야 하는 건지 의아하다. ‘정치적 개입을 차단하고, 의료인 과반의 의결기구를 만들어 위중증 환자 수를 기준으로 방역 단계를 정한다’는 식으로 구체적 행동을 제시했어야 한다.
코로나19로 힘든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인다는 이재명 후보 공약은 ‘임대료 분담제 도입’과 ‘공정 임대료 가이드라인 제정’이다. 임대료를 누가 얼마씩 나눈다는 걸까? 임대인더러 부담하라고 하면 순순히 그러마 할까? 순순치 않은 임대인 때문에 ‘임대료 분담법’을 만든다면 위헌소송감 아닐까? 공정의 척도는 임대인의 자산일까, 임차인의 손실일까? 가이드라인이란 참고하라는 걸까, 강제로 따르라는 걸까?
심지어 양측 모두 대학 등록금·구조조정 문제나 특수목적고 존폐 같은 민감한 과제에 대해선 명사로 된 약속마저 내놓지 않았다.
다시 이어령에게 돌아가자. 그는 스스로에 대해 “일생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하느라 따돌림 당하고 외로웠던 아웃사이더”라고 했다. 하지만 그래야만 사실과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9일까지 유권자였던 우리는 10일 다시 국민의 자리로 돌아왔다. 선거가 끝났다고 ‘좋은 나라’, 당선인의 표현대로라면 ‘공정과 상식으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가만히 앉아 기다릴 자리가 아니다. 공정과 상식은 뭔지, 새로운 나라는 뭔지, 그리하여 어떤 나라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건지에 대해 당선인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9일까지 공약으로 말했던 당선인 역시 스스로 다시 물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명사가 아닌 동사로 국민에게 답을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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