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라는 자리에 대해 피부로 느낀 때가 있다. 2012년 12월 18대 대선이 막 끝난 직후였다. 정당팀의 막내 기자로 스토커처럼 쫓아다닌 대선 후보에게 더 이상 다가가 뭘 물을 수 없었다. 대통령 당선인이 된 그를 층층이 둘러싼 경호원 탓에 접근이 아예 불가능했다. 당선인이 참석한 자리에는 지정된 풀(pool) 기자만 ‘보도’라고 적힌 식별표를 차고 들어갔다. 그전까지는 멀리서 실루엣만 보여도 달려가 곤란할 질문을 쏟아냈다. 답할 때까지 나타나는 곳마다 쫓아갔다. 그런 경우 후보는 “드릴 말씀이 없다”라는 말이나마 해야 했다. 보는 눈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청와대에 들어가고 나면 달라진다. 기자들도 ‘핵관’(핵심 관계자)에게 대통령 의중이 무엇이냐고 확인하는 길밖에 없다.
칩거의 아이콘인 박근혜 전 대통령도 의원 시절에는 국회 화장실에서 마주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 순간에는 질문을 해야 하나’ 고민하며 나란히 손을 씻은 기억도 있다. 의원들도 그때는 늦은 밤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찾아가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대통령비서실장조차 얼굴 보기 힘들었다는 박 전 대통령도 대중에 노출돼 있을 땐 국민을 등지기 어려웠다.
10일 새벽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지자 청와대, 경찰 경호인력이 서울 서초동 자택으로 이동했다는 소식부터 들렸다. 이후 윤 당선인은 현직 대통령과 동일한 철통 경호를 받기 시작했다. 그럴 수도 없겠지만 무모한 기자가 얼굴을 들이밀고 궁금한 것을 물으려 했다가는 자칫 테러범으로 몰린다.
원할 때 누구에게든 질문할 수 있지만, 원할 때가 아니면 질문 받지 않을 수 있는 게 권력이다. 어떤 공간이든 최고 권력자만 그럴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마지막 대선 TV토론에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처럼 (직접 나서서) 브리핑을 수시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랬던 문 대통령도 임기 5년 동안 기자회견을 한 게 8차례뿐이다. 되레 뇌리에 남는 건 문 대통령이 매주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참모를 꾸짖는 모습이다. 국민을 대신해 회초리를 드는 마음이었을 테다. 그러나 이 회의는 상관으로서 지시하는 게 본령인 자리다. 난감한 질문에도 답해야 하는 자리는 아니란 얘기다.
윤 당선인은 10일 당선 인사에서 “언론 앞에 자주 서겠다. 좋은 질문을 많이 던져 달라”고 말했다. 국민과의 거리를 좁히겠다는 취지라 환영한다. 다만, 앞서 말했듯 대통령의 자리란 그리 간단치 않다. 귀를 열겠다는 사무친 각오가 아니면 금세 언로(言路)가 막힌다. 제대로 된 말을 건네는 이가 없어 권력자는 한없이 외롭다.
기우일지 모르나 덧붙일 게 있다. 윤 당선인은 화통한 성격으로 주위에 친구가 많다. 한편으로는 감정의 기복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캠프 시절 내부 회의 도중 버럭 화를 냈다는 일화가 심심치 않게 들렸다. ‘혼밥’ 하지 않는 대통령도 좋다. 그러나 듣기 싫은 얘기도 참고 듣는 대통령이면 더 좋겠다. 버럭 하는 대통령에게 참모는 바른말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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