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정의란 무엇인가’를 놓고 토론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난파당한 배에서 살아남은 네 명의 선원이 망망대해를 표류하다가, 그중 가장 약한 사람을 잡아먹은 사건이었다. 남은 세 사람은 그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며 9일을 더 버틴 끝에 구조됐다. 물론 그들은 본국으로 송환돼 살인죄로 기소됐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두고 열띤 토론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린 그런 질문을 그리도 가볍게 던질 수 있을까.
바를람 샬라모프는 모스크바대 법대생이던 시절 시베리아의 악명 높은 수용소 ‘콜리마’에 수감됐다. 거기서 17년을 지내며 추위와 굶주림, 하루 16시간이 넘는 중노동에 시달렸고 “인간이 봐서는 안 될 것, 만약 보았다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만한 끔찍함을 겪었다. 허기를 못 견뎌 다른 수감자의 시체를 뜯어먹은 청년, 자신이 아끼던 강아지를 잡아먹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래도 맛있었어”라고 중얼대는 사제, 다른 수감자가 죽으면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의 몫으로 배급될 빵을 차지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샬라모프는 자신이 겪은 일을 ‘콜리마 이야기’라는 기록으로 남겼다.
“여기서 나는 당분간 아직 인간이었다.” 이 문장엔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과 겸허함이 담겨 있다. 샬라모프는 자신이 인간이긴 하되 ‘당분간, 아직’이라고 했다. 극한의 바닥에서 가장 무서운 심연을 마주할 때 끝까지 ‘인간’으로 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았던 것이다.
“나라면 어땠을까?” 온갖 상황에서, 나 혹은 우리는 너무 쉽게 질문을 던지고, 정의로 충만한 답을 내놓는다. 그런 세상을 향해 샬라모프는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묻는다. “우리는 당분간 아직 인간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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