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더니, 이번 대선에선 유독 기이한 장면들이 많이 나왔다. 극성 친문(친문재인) 단체인 ‘깨어있는 시민연대’(깨시연) 회원들은 이달 1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 앞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2019년 조국 사태 때 이곳에서 윤 후보(당시 검찰총장)를 비난하는 ‘조국 수호’ 집회를 벌인 지 딱 3년 만이다. 이들은 이날 지지 현장을 찾아온 윤 후보에게 “‘서초의 빚’을 갚겠다”며 사과했다.
바로 다음 날엔 박근혜 전 대통령 동생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며 민주당 선대위 총괄특보단 고문으로 합류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때 홍준표 의원 캠프에서 활동했던 표철수 전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 등도 이 후보를 공개 지지하고 나섰다.
물론 “내 적이 잘되는 꼴은 못 보겠다”는 ‘적의 적은 친구’라는 심보로 출발한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이를 두고 홍 의원도 “대선판이 참으로 난잡스럽다. 이념도 없고 이합집산하는 모습들이 참으로 가관”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래도 진영을 초월한 지지 선언에 분명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고 본다. 내부의 적이 싫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외부의 적과 손을 잡았건만 완전히 뿔난 악마 수준일 줄 알았던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적어도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거부하던 흑백논리 사고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됐다.
대선 당일 “대선 기간의 만남과 동지적 동행을 잊지 못할 것 같다”는 한 ‘문파’의 트윗에 국민의힘 원희룡 선거대책본부 정책본부장이 “저도 문파를 재발견했다. 새 큰 길 함께 만들어가자”고 답한 장면만 봐도 그렇다. 2020년 7월만 해도 원 본부장은 조국 사태를 언급하며 “이를 강변하는 ‘찐(진짜) 친문’은 뇌가 마비된 맹신집단”이라고 퍼부었고, 여기에 수많은 친문 지지층이 몰려가 “제주 도정이나 잘하라”고 비난 댓글을 달던 사이였다.
차악을 고르는 최악의 비호감 대선을 치르느라, 문재인 정부 내내 이어졌던 편 가르기에 가스라이팅당했던 사람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통합하게 된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이를 의식한 듯 10일 당선 기자회견에서 “(저를 불러낸 건)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다. 국익이 국정의 기준이 되면 우리 앞에 진보도 보수도, 영호남도 따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정치권의 못된 습성상 새 정부에서도 편 가르기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대선에서 정치권이 앞장서 부각시킨 세대 갈등과 젠더 갈등이 그 예고편이었을지도 모른다. 새 집권여당 대표가 선거 직전까지 “이대녀(20대 여성)는 결집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떠드는 수준이니 말이다. 다만 혹시라도 또 정치권의 표 장사용 갈라치기에 당해 국민들끼리 감정싸움을 하는 때가 온다면 2019년 나라가 반으로 쪼개져 ‘조국 수호’, ‘조국 구속’을 외치던 때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 감정 소모와 에너지 낭비가 불과 3년 만에 얼마나 허무해졌는지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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