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멀어지는 ‘모빌리티 혁신’
합법 판결에도 정치권 “금지”… 대안 내세운 ‘플랫폼 운송사업’
올초 420대 첫허가 걸음마 단계… ‘콜’ 기반 가맹-중개 형태 압도적
2년새 택시종사자 2만6164명↓… 서울기사 수입 660만→550만원
《“겨울에 두꺼운 옷을 입고 버티면 봄이 안 옵니까?”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를 둘러싼 갈등을 소재로 지난해 10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타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에 출연한 이철희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이렇게 얘기한다. 2년 전 이른바 ‘타다금지법’(개정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 만들어질 때 국회의원이었던 그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법안 통과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낡은 생각과 규제로는 혁신적인 서비스의 등장을 막을 수 없으니 혁신의 과실을 같이 나눌 방법을 찾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2020년 법 통과 직후 국토부는 “타다가 더 많아지고 더 다양해진다”며 ‘타다금지법’이 아니라 ‘타다활성화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 개정 2년, 모빌리티 업계에는 국내의 택시와 모빌리티 영역에 혁신이라는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 3종류로 모빌리티 사업 제도화했지만 ‘카카오’만 독주
2018년 10월 출시된 타다 베이직은 11인승 승합차(카니발)를 중심으로 기존의 택시와 차별화되는 운송 서비스로 각광받았다. 기존 택시보다 요금은 비쌌지만 목적지를 가려 받지 않는다는 점과 넓고 쾌적한 공간, 친절한 서비스로 큰 호응을 얻었다. 등장 1년여 만에 이용자가 100만 명을 넘었다.
하지만 타다는 ‘무허가 운송사업’이라는 택시업계의 반발이 거셌다. 법원은 타다 서비스가 합법이라고 판결했지만 정치권과 국토부는 타다금지법을 추진했다. 핵심은 두 가지였다. 기존 타다 베이직의 운영을 불법화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모빌리티 사업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제도화하는 것이었다. 기존에 개인·법인이 보유하고 있던 택시면허의 사회적·재산적 가치를 지켜줘야 한다는 논리였다.
11∼15인승 승합차의 경우 렌터카 사업자의 운전기사 알선을 예외적으로 허용했던 법을 개정하면서 타다 베이직은 불법이 됐다. 그러면서 법은 운송플랫폼 관련 사업을 △플랫폼 운송사업(타입1) △플랫폼 가맹사업(타입2) △플랫폼 중개사업(타입3)으로 제도화했다.
국토부가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 1월을 기준으로 타입 1∼3은 각기 3곳, 7곳, 3곳의 사업자가 사업을 벌이고 있다.
실제 운행 중인 차량의 수를 감안하면 타입2와 타입3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타입1의 경우 올해 초 3곳의 사업자가 총 420대의 정식 사업허가를 처음 받았을 뿐이지만 타입2의 경우 지난해 말 운행대수가 4만2000대를 넘어섰다. 비가맹 택시 대다수가 활용하는 카카오T 등의 호출 중개 서비스는 타입3에 해당한다.
결국 타다가 사라진 이후에 국내 모빌리티 시장에서는 기존의 택시만이 살아남았고, 호출 서비스 이용이 급증하는 흐름 속에서 플랫폼택시 시장을 장악한 카카오모빌리티의 독주로 이어졌다. 모빌리티 스타트업 창업자 A 씨는 “택시 시장은 결국 ‘콜 싸움’이기 때문에 품질보다 호출했을 때 빨리, 잘 잡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라며 “카카오T가 제일 잘 잡히는 상황에서 후발 주자를 육성하기 힘들고 경쟁이 안 되는 구도”라고 말했다.
○ 타다 대체 ‘타입1’은 아직 걸음마…“가장 큰 피해자는 이용자”
모빌리티 업계에서는 법 개정 이후에 타다를 대체하는 타입1 사업이 시장에 안착해 ‘메기’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고 있다.
택시면허 없이도 승객을 실어 나를 수 있는 타입1의 경우 사업자가 요금 결정에 자율권을 가지면서 기여금을 내는 방식으로 사업을 벌인다. △매출액의 5% △대당 월 40만 원 △운행 횟수당 800원 중 하나를 선택해서 납부하는 부담을 지면서 사업하는 방식이다.
올 1월부터 3곳의 기업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는 평가다. 일반 이용자의 호출을 받아 운행하는 ‘온디맨드’ 기반의 영업을 하려면 서울로 영업지역을 한정짓더라도 기업마다 500대의 운행대수는 필요한데 레인포컴퍼니, 파파모빌리티, 코액터스가 받은 허가대수는 각각 220대, 100대, 100대에 불과하다. 과거 타다의 경우 서울에서 약 1500대까지 운행하면서 실시간 호출 서비스에 나선 바 있다.
허가대수가 적은 이들 기업은 B2B(기업 간 거래) 시장을 우선적으로 공략하는 모습이다. 실시간 호출 서비스가 불가능하니 법인의 전속 차량·기사 수요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고객을 확보하거나 개인들의 고정적인 예약운행 수요를 공략하는 등의 식이다. 권오상 레인포컴퍼니 대표는 “장기간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사업인데 확장성을 보여줘야만 외부 투자를 받으며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현재 시점에서 타다금지법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돈을 더 내더라도 고급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은 이용자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형 택시업체 운영자 B 씨는 “국내 모빌리티 업계는 여전히 택시를 중심으로 운영 중인 셈”이라며 “타다금지법은 택시면허라는 권리를 지켜줬지만 이용자 편익 증진이라는 측면에서는 성공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 코로나19 사태 속에 택시업계도 갈수록 위축
이런 가운데 타다금지법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지켜낸 것 같았던 택시업계도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모빌리티 시장 자체를 키우지 못한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사업 여건 자체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김상훈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택시 운수종사자는 2019년 26만7189명에서 2021년 24만1025명으로 줄었다. 전국 택시 기사의 평균연령도 2016년 59.7세에서 2019년 61.6세, 2020년 62.2세, 2021년 62.6세 등으로 고령화하는 추세다. 서울시 일반 법인택시 기사의 운행 수입 역시 2019년 660만 원에서 2020년 560만 원, 2021년 550만 원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배달, 택배 인력 수요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한다.
하지만 모빌리티 업계에서는 택시업계가 신사업 의지를 가진 창업가나 청년들이 뛰어들기 힘든 영역이 됐다는 점을 함께 지적하고 있다. 타다를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택시산업으로 유입되는 자금과 인력을 늘리고 더 좋은 서비스를 기반으로 자연스레 요금을 높이는 방식의 ‘사업 확장’에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법 제정 2년이 지났지만 ‘타입1’은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고 모빌리티 업계 전반의 여건도 좋아졌다고 보기 힘든 상황”이라며 “신산업과 기존 택시 종사자들이 함께 ‘윈윈’할 수 있는 지원이나 규제 완화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