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12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수1과장을 할 때 일이다. 2011년부터 상처가 곪아터진 저축은행 비리 사건은 금융감독원 조사 등을 거쳐 같은 해 9월 검찰로 넘어갔고 검찰 내에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이 꾸려졌다. 저축은행 관계자들의 불법 대출 의혹이 부실을 감추기 위한 정치권에 대한 로비 및 구명운동 의혹으로 번지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져갔다.
윤 당선인도 수사팀에 포함됐다. 수사가 몇 달간 지속되면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 등 여권 인사들로 수사의 칼날이 향했다. 그러자 청와대로부터 수사팀에 압력이 내려왔다고 한다. 관련된 야당 인사를 찾아내 여야 균형을 맞추라는 취지였다.
그러자 윤 당선인은 수사팀 후배들에게 “그런 것은 못하겠다. 우리 다 같이 때려치우자”며 “다 같이 로펌을 차리고 이름은 법무법인 ‘n분의 1’로 하자”고 했다고 한다. 지분과 수익 등을 후배들과 공평하게 나누겠다는 뜻이었다.
다행히 수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당시 야권 중진 의원의 저축은행 연루 의혹이 불거지면서 윤 당선인 등 수사팀이 일괄 사표를 쓰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검사 윤석열은 당시에도 공정하고 정의로운 마인드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비화(秘話)는 윤 당선인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부당함을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성격과 아랫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수평적 리더십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6년 4월 대검 중수부 검사 시절 현대자동차그룹 비자금 사건을 수사할 때 보여준 윤 당선인의 ‘반항끼’도 유명하다.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구속을 놓고 검찰 수뇌부가 고심을 거듭하자 그는 윤대진 검사(현 검사장)와 함께 정상명 검찰총장을 찾아가 “정 회장을 법대로 구속해야 한다”며 사직서를 내밀며 구속 방침을 관철시켰다.
윤 당선인은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 시절 검찰 수뇌부의 외압을 폭로했고, 특히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거듭된 좌천과 문재인 대통령의 파격적인 서울중앙지검장 및 검찰총장 임명,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이후 현 정부와의 갈등 등 드라마틱한 노정을 거듭하다 결국 야권 대선 후보가 됐다. 불공정과 내로남불에 지친 국민들은 정의와 공정을 내세운 윤 당선인을 결국 20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윤석열호의 출발은 일단 순조롭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에게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맡기며 단일화 과정에서 약속한 공동정부도 실천하고 있다. 윤 당선인이 당선 직후 내세운 ‘청와대 광화문 이전’과 ‘대통령민정수석실 폐지’ 공약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막기 위해 역대 대통령이 누렸던 권위와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겠다는 시도여서 이목을 끈다. 무엇보다 정치권력이 권력을 남용해 검찰 인사와 수사에 과도하게 개입하면서 검찰총장 출신인 자신이 정치권으로 불려 나왔다는 점을 스스로 잊지 말아야 한다. 윤 당선인이 외쳤던 ‘n분의 1’이 국정 운영 과정에서 권력 나누기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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