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윤석열 당선인은 주말 한강공원에서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진을 언론에 제공했다. 그제는 남대문시장을 찾아 꼬리곰탕으로 식사를 했다. 사진만 보면 우리의 일상과 별 차이가 없는 모습이었다.
5년 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관저에서 김정숙 여사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하는 모습을 취재진에게 공개했다. 또 청와대 직원 식당에서 직접 식판을 들고 음식을 담거나, 식사를 한 뒤 와이셔츠 차림으로 산책을 하기도 했다. 기자단과는 편안한 복장으로 뒷산을 올랐다. 이후에는 관저에서 반려견과 시간을 보내거나 처마에 감을 말리면서 신문을 읽는 여사 사진 등을 ‘청와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취임 초기 시장이나 마트를 방문해 물건을 구매하거나, 시식을 하는 등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강조했다. SNS엔 편안한 복장을 하고 휴가지를 거니는 사진을 올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취임 후 직접 커피를 따르거나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추석을 앞두고 관저에서 손녀들과 함께 송편 빚는 사진도 공개했다.
대통령의 자리는 힘과 위엄을 상징한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취임 직후에는 탈권위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찾아보기 어렵다. 이후에는 대통령으로서 참석해야 하는 공식행사에서 정형화되고, 경직된 사진이 대부분이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에 당선돼 청와대에 입성하면 취재진과의 거리 두기가 시작된다. 후보 시절 기자들과 수시로 만나고, 이야기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이는 청와대 구조상 대통령의 업무공간과 기자들이 있는 춘추관 사이가 멀고, 출입기자라 하더라도 보안을 이유로 대통령에게 접근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얼굴을 마주하는 건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나 행사를 언론에 공개할 때 기사를 쓰고, 사진을 찍는 대표 기자 몇 명뿐이다. 기자들이 직접 질문할 수 있는 기자회견은 사전 리허설을 거쳐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이려 하기 때문에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외신을 통해 들어오는 미국 대통령 사진을 보면 솔직히 부럽다. 청와대와 달리 백악관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답하는 사진이나, 고령인 점을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기자들 앞에서 뛰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기자들의 시선도 대통령에게만 고정돼 있지 않아 산만하기도 하지만 자연스럽다. 그리고 대통령이 워싱턴이나 지역에서 행사를 마친 뒤 동네 아이스크림가게에 들르는 장면도 이색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나는 한국 사진기자로는 유일하게 현장에 들어갔다. 회견장까지는 폭발물 탐지견의 수색을 포함해 몇 단계의 까다로운 보안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회견장 내에서의 이동은 자유로웠다. 백악관 출입기자와 대통령이 질의응답을 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전 준비나 격식 없이 오랜 시간 단상에 서서 진지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한 답변을 이어갔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이런 사진을 보고 싶다. 윤석열 당선인은 검찰총장 시절엔 전임자들과 달리 지하 주차장으로 출근하고, 점심시간 이동 장면도 사진기자에게 잘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를 시작한 뒤 SNS에 반려견 사진을 비롯해 선거 기간에는 ‘어퍼컷’ 세리머니를 선보이는 등 딱딱하고, 무게 잡는 여의도 기성 정치인들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출연한 예능 프로에서 “잘했건, 잘못했건 국민들 앞에 나서겠다”고 했다. 당선 후에도 “언론 앞에 자주 서겠다”고 했다. 그러면 지금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당선인 사무실이나 취임 후 차려질 집무실로 출근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답하는 모습부터 말이다. 기자들의 질문이 설령 기분이 나쁘더라도 진짜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더 나아가 후보 시절 말처럼 조만간 코로나가 종식되면, 대학가 어느 호프집에서 ‘골든벨’을 울리는 대통령의 사진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댓글 0